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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인용 2026. 2. 25. 00:48
그런데 안타깝지만, 나에게는 조난자들을 등에 업고 하산할 만큼의 체력은 없다. 그래서 일단 나의 임무를 그들을 ‘격려’하는 것에 한정하기로 했다. 눈 덮인 산을 달려서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조난자’들의 콧등을 핥고, 브랜디를 먹이고, ‘그 다음은 자력으로 일어서기를’이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난다. ‘현대사상의 세인트 버나드’.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도 좋아하고. … ‘몰라도 괜찮아’라는 이 논리를 목에 걸고 나는 오늘도 ‘현대 사상의 조난자’들의 지적 소생을 위해서 눈 덮인 산을 질주하고 있다. 멍멍 (『망설임의 윤리학』)
좋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본질적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실제로 지금까지 팝 뮤직 연구자의 호의적인 서평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젊은 독자 중에서도 이 책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나바에 선생이 상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냥한 사람이 젊은이들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을 당사자인 젊은이들이 뿌리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을 그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것은 질책, 명령, 요구의 어조뿐이다.
나바에 선생의 말은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 그는 구명보트 뱃전에서 몸을 내밀어 물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내 손을 잡으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호의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들은 ‘이 사람의 친절에는 딴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뭔가 팔려고 한다든지 종교를 믿으라고 권유한다든지?’ 같은 생각으로 눈을 치뜨고 노려볼 뿐 나바에 선생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타자에게 내민 성심성의를 다한 선물의 수난이다. 상냥한 사람은 그 점이 안타깝다.
나는 나바에 선생처럼 친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물에 빠진 젊은이들을 다소 안타깝게 생각한다. 구명보트에 아직 자리가 있으면 흔쾌히 태워 줄 마음도 있다. 그런데 차가운 물속에 손을 담그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표류자에게 등을 돌리고 보트 안에서 연회를 한다. 산해진미를 만끽하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물에 빠진 쪽도 즐거워 보인다는 생각에 그냥 놔둬도 가까이 올 것이다. 태워 달라고 하면 태워 준다. 그런데 “딴마음이 있는 거죠?” 같은 무례한 말을 하는 녀석은 그대로 바다로 밀어 버린다. … { 2004・10・21 }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인용자: 우치다 선생님이 매정하신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취급 당해도 싼 겁니다. 외려 허우적거리면서 자력갱생할 수도 있구요.)
하야오 (…) 그런 자리에 앉아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보면 판단력이 굉장히 예리해집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잘못도 하죠. 잘못도 저지르지만, 그래도 직감적으로 단번에 알 수 있는 부분도 상당히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그렇게 쉽게 당하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도 한눈에 이런저런 일을 훤히 꿰뚫어보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정말 그래요.
(정신의학이라든가 이쪽 계열이 특히 골 때리기는 하더라고요. - 인용자)
하루키 그런 카리스마적인 직감력은 히틀러도 갖고 있었죠. 군사전문가가 꿰뚫어볼 수 없는 것을 수없이 간파해서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거나.
하야오 바로 그겁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아니었죠. 운동선수도 그래요. 계속 승승장구할 때가 있죠. 그럴 때는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고 합니다. 도저히 역전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결국 난 이긴다’ 고 확신하면 마음이 매우 안정되어 정말로 이기죠. 그런데 그것이 한번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그렇게 끝없이 명석해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우리 직업에서 가장 무서운 게 바로 그거죠.
하루키 그건 심리치료사로서 그렇다는 뜻인가요? 누군가를 만나면 단번에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다는?
하야오 그렇죠. 꿰뚫어본 것처럼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게 딱딱 들어맞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 되겠지 했는데, 어, 정말 이렇게 됐네, 하는 식이죠. 그러나 그러기 시작하면 절대 안 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틀릴 때가 오니까요. 인간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러다보면, 아사하라 쇼코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어떻게 해주자’ 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끝입니다.
(인용자: 너나 잘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사하라 쇼코.)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에, 스스로 점점 모르게 되는 수행을 해온 것 같습니다. 좀더 젊을 때는 많이 아는 줄 알았어요. 정말로. 인간이 ‘명석해지는’ 시기는 분명히 있지만, 거기 도취된 사람은 모두 못쓰게 됩니다. (『약속된 장소에서』)
(이하 <여자는 무엇을 욕망하는가-우치다의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 비판->,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석중 옮김, 266~268쪽)
"왜 지적으로 탁월한 페미니스트들은 그 사상 운동의 퇴조를 저지할 수 없었는가?
결론부터 미리 말해두자.
그것은 인간의 지성은 그 지적 탁월성의 절정에서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성의 부조는 '절호조絶好調'라고 하는 양태에서 발현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은 그 '절호조'의 정점에서 '나는 어떻게 이만큼 똑똑한가?'라고 하는 (대답해서는 안 되는) 질문에 그만 답을 내놓아 버리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도 지크문트 프로이트도 막스 베버도, 역사상의 천재들은 놀랄 만한 통찰력을 가지고 다양한 문제들에 관하여 신선하게 설명을 해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어째서 온갖 문제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똑똑한가'에 관해서만은 설명을 유보했다.
(...) 어째서 다른 인간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는 술술 이해가 되는가, 그 똑똑함이 근거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는 '불능'을 통해서, 천재는 그 통찰이 천부적인 것이고, 인위적으로 구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저도 이 묘리를 깨닫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니, 아직도 그 길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면 되겠죠. - 인용자)
예전에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 속에서 '나는 어떻게 이 정도로 똑똑한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니체는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똑똑한지를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다(읽어보면 바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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