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스 레터)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취재 2026. 1. 2. 11:14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나루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다. 키는 평균에서 조금 작은 정도, 광대뼈가 조금 두드러져 보이는 얼굴의 소유자였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언변이 있어서 주위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런 그와 음울한 내 사이가 좋았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이야기다.
우리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견해가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일에는 웃어 날릴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고교시절에 우리는 자주 패스트푸드점에 죽치고 앉아서, 태도가 불량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일상적인 일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해서 표현하곤 했다.
(…)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고 난 무렵에는, 우리는 고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화의 내용이야 뭐든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문법을 통해서 어떠한 일이든 휘저어가는 것이 우리 대화의 목적이었다. 나루세와 나는 이야기하자마자 잊어버릴 만한 시시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으면서 서로 웃었다.
그 한 마디가 그의 입에서 나올 때까지는, 나는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야, 쿠스노키.” 나루세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너, 그림은 아직도 그리고 있냐?”
“아니.” 나는 곧바로 대답한 뒤, 그것에 이어질 말을 신중하게 찾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부터는 전혀 안 그리게 되었지.”
“역시 그런가.” 나루세는 웃었다. “아직도 그리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 스스로도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십여 초도 되지 않는 이 대화로 인해 내 안에서 3년에 걸쳐 배양되어 온 나루세에 대한 호의는, 정말 덧없이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덧없다.
뭔가를 수습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농담을 날리는 그에게,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말했다.
저기 말이야, 나루세.
그것만큼은 비웃어서는 안 되었어.
확실히 나는 그것을 그만뒀지.
하지만 그게 그것을 비웃어도 되는 이유는 절대 되지 않는다고.
너라면 그걸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나루세를 향한 내 웃음은 점점 형식적인 것이 되어갔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내 쪽에서 화제를 꺼내지는 않고 나루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기만 하게 되었다.
옆에 앉아있던 미야기가 말했다.
“……그러면 답 맞추기에 들어갈까요.”
나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지만 미야기는 상관없이 계속했다.
“당신은 지금 나루세 씨가 조금 싫어졌겠습니다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루세 씨도 당신의 생각만큼 당신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본래대로라면 당신은 2년 뒤에 오늘과 비슷한 자리에서 나루세 씨를 만나고, 사소한 일을 계기로 말다툼을 한 끝에 갈라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전에 일찌감치 마무리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 사람에게 기대한들,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때 내가 미야기에게 역정을 내게 된 것은, 친구를 바보 취급했기 때문이 아니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도 아니고, 필요 이상으로 빈정거리는 표현을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나의 옛 꿈을 비웃은 나루세에 대한 분노가 불합리하게 미야기를 향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에 화를 낸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 난처해지게 된다. 어쨌든, 정면에서는 나루세가 태평스레 나불나불 수다를 떨어대고, 바로 옆에서는 미야기가 중얼중얼 어두운 소리를 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새된 목소리로 거의 감탄사만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주고받고, 등 뒤에서는 극단에 속한 (劇団? 極端? – 인용주) 듯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취한 눈치로 열심히 지론을 이야기하고, 저쪽 구석 자리에서는 학생 집단이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고……. 갑자기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시끄러워. 나는 생각했다.
왜 좀 더 조용히 못 하는 거야?
다음 순간, 나는 손에 든 글라스를 미야기가 있는 쪽 벽을 향해 내던지고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그래도 가게 안은 한순간만 정적이 흘렀을 뿐, 이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나루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점원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미야기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천 엔짜리 지폐 몇 장인가를 꺼내서 테이블에 놓아두고, 나는 도망치듯이 가게를 나왔다.
버스를 타고 역으로 돌아오던 중,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낡은 배팅 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차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린 뒤, 그곳에 들어가서 300개 정도의 공을 쳤다. 배트를 내려놓을 무렵에는, 손은 저리고 피투성이에,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산 포카리스웨트를 벤치에 앉아 천천히 마시면서, 퇴근 중에 배팅 센터에 들른 듯한 남자들이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명의 세기 탓일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것들의 색이 이상하게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나루세와 그런 모습으로 헤어지게 된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정말로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나루세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긍정해주는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변해버린 나루세와 변할 수 없었던 나.
그중 옳은 것은 아마도 나루세 쪽일 것이다.
배팅 센터를 뒤로 하고 역까지 걸었다. 홈에 나가자 곧 열차가 왔다. 차 안은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교생들로 가득해서, 나는 급격하게 나이를 먹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열차가 달리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날 작업이 끝날 무렵에는 농원 동남쪽에 있는 절 쪽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보름달은 고요하고, 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좋다. 그 고요함을 등에 업고 집으로 향했다.
라이너 노트: 위 글의 번역가 현정수 선생은 비(非)어문학 전공 출신으로, 한 작가의 작품들을 오래 작업해왔으며, 무엇보다 지독한 워커홀릭입니다.
'취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인물) 일본이 나락간 이유.txt (0) 2026.01.04 (에디터스 레터) 왜 AI번역 안 해?? (0) 2026.01.03 (에디터스 레터) 오길비의 정체 (0) 2025.10.28 【완료】 스타벅스 프리퀀시 그냥 드립니다. (2) 2025.06.28 【패스트트랙】 우치다 선생님 컨퍼런스 2025 관련기사 (2)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