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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휘낭시에 비긴즈인용 2024. 12. 14. 12:12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면, 간혹 선견지명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제 막 동트려는 시대의 함축적 의미를 예견한다. 이 장을 바로 그런 인물이 남긴 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1540년대 어느 시점에 파리에서, 신앙심 잃은 수도사이자 의사이며 법학자였던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Labelais)는 조롱 섞인 찬미의 글로 유명해질 글을 하나 썼다. 그는 그것을 걸작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Gargantua and Pantagruel)』의 제3권에 끼워 넣었다. ‘부채 예찬’으로 알려지게 되는 작품이다.
라블레는 파뉘르주라는 인물의 입을 통해 부채에 대한 찬사를 쏟아낸다. 파뉘르주는 떠돌이 학자로, 고전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또 “돈을 버는 방법을 63가지나 아는” 인물이다. 그가 아는 방법 중에서 가장 명예롭고 일상적인 방법이 절도이다. 선한 기질의 거인 팡타그뤼엘은 파뉘르주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상당한 소득까지 제공한다. 그러나 파뉘르주가 돈을 물 쓰듯 쓰며 언제나 빚에 허덕이는 것이 그를 괴롭힌다. 채권자들에게 빚을 다 갚아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팡타그뤼엘이 제안한다.
그러자 파뉘르주가 질겁하며 대답한다. “하느님이 빚을 갚는 것을 금지했어!” 사실 부채는 그의 철학의 바탕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빚지도록 하라.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이 멋지고 축복받는 삶을 길게 누리게 해 달라고 하느님에게 영원히 기도할 것이다. 당신이 그 사람에게 지고 있는 빚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그 사람은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신에 대해 좋게 말할 것이다. 또 당신을 위해 새로운 대출자를 끊임없이 물색해줄 것이다. 그래야만 당신이 그에게 갚을 돈을 빌릴 수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그의 주머니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채우도록 한다는 말이지.
그들은 무엇보다도 당신이 돈을 갖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인의 장례식 날 함께 순장의 운명을 맞게 되어 있는 고대의 노예들과 비슷하다. 노예들이 주인의 장수와 건강을 바랐을 때, 그 마음이 진심이었지 않았는가! 더욱이, 부채는 당신을 무(無)에서 무엇인가(돈과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채권자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든다.
만약에 인간 존재들이 서로에게 아무런 빚을 지고 있지 않다면, 삶은 “이전투구”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 살려!”라거나 “불이여!”라고 외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을 것이다. 왜? 그 사람이 아무것도 빌리지 않았으니까. 누구도 그의 화재나 난파, 추락 혹은 죽음으로 잃을 게 없다. 그는 아무것도 빌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빌리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이 세상에서 추방되고 말 것이다.
가족도 없고, 외롭고, 하는 짓이라곤 큰돈을 빌려 쓰는 것밖에 없는 파뉘르주는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세상의 예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의 관점은 ‘부유한’ 채무자의 관점이다. 채무를 갚지 못해도 병균이 우글거리는 지하 감옥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설명은 논리적이다. 여기서 라블레는 언제나처럼 심술궂은 마음으로 이 세상에 관한 가정들을 부르주아들의 격식(이런 격식을 라블레 자신도 혐오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해박한 고전 지식과 지저분한 농담을 뒤섞고 있다) 뒤에 도사리고 있는 교환을 빌려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은 맞다. 만약 우리가 인간의 모든 상호 작용에 대해 사람들이 이것을 주고 저것을 받는 식의 교환으로 정의하길 고집한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부채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부채가 없으면,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을 것이다. 부채 없는 세상은 원시의 카오스로 돌아갈 수 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 대해 조금의 책임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또 우리 모두는 외따로 떨어져나간 행성이 되어 제 궤도조차 지키지 못할 것이다.
팡타그뤼엘은 그 어떤 빚도 지지 않았다. 자기 앞에 펼쳐지던 사태에 대한 그의 기분은 ‘로마서’의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라. 서로간의 사랑과 애정을 빼고는.” 그런 다음에 팡타그뤼엘은 성경의 말씀과 비슷한 어조로 “그대의 과거 부채로부터 그대를 자유롭게 하겠노라.”라고 선언한다.
그러자 파뉘르주가 대답한다.
“고맙다는 말밖에 내가 달리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228~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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