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스 레터) 혁명, 그 상속과 증여인용 2024. 8. 15. 17:19
1918년
명보가 자리를 뜨고 나서, 성수는 자신도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10분쯤 기다렸다. 오랜 친구와의 만남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게 진심으로 유감스러웠다. 함께 먹고 마시며 지난 모험담을 추억하고 누군가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흥청거리는 대신, 그들은 지금 서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큰 충격을 받은 터였다. 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보다 훨씬 더 불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성수의 잘못을 감히 그의 앞에서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의 마음에 들고 싶어 안달할 뿐이었다. 부하들은 경의를 표했고, 동료들은 칭찬 일색이었으며, 아내는 그를 숭배하듯 대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성수에게는 이러한 보편적인 승인이 무조건 일어났기에, 그것이 바로 객관적 현실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네가 틀렸다는 말을 바로 앞에서 듣고 난 지금,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핵심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명보의 말이 옳은가? 생득적으로 타고난 권리를 포기하고 상해나 시베리아 어딘가의 깊은 산촌으로 터전을 옮겨 표적 사격이나 암살 모의로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게 틀린 거야?’ 성수는 자문했다. 부유한 양반 가문의 자제들이나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이들, 혹은 그 사이의 중인 계층에 속하는 한국 청년들이 그런 은신처에 모여 조국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한다는 얘기는 성수도 들은 바 있었다. 그들은 약지의 끝을 잘라 피로 서약을 하고, 말끔하게 재단한 슈트와 모자를 멋스럽게 갖춰 입고 다니는데 그건 언제 죽음의 순간을 맞더라도 가장 고귀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예고 없이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라는 얘기였다. 또한 여자들은 너나 할 거 없이 그런 청년들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고도 했다.
‘하지만 도대체 뭘 위해서냐? 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짓을 한들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아. 그뿐만 아니라, 암살은 살인 범죄잖아.’ 이러한 일련의 생각이 성수의 불안과 초조함을 조금씩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똑같이 살해하자는 게 과연 올바른 답일까? 그 모든 게 너무 야만적이고, 그만큼 옳지도 않은 짓이야. 그래, 그런 무모한 폭력에는 이바지하지 않을 테다. 명보가 나를 어떻게 판단하든,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강요당하진 않을 거야.’
(…) 성수는 자신의 비범한 행운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천박하거나 무지하지 않았다. 가끔 그는 인생이 불공평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하다고 느끼곤 했다. 쉰한 살, 중년의 활력이 정점에 이른 그는 여전히 사무실에 출입하며 정기적으로 책을 출간했다. 많은 또래 동료들처럼 방황하거나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경기가 침체하고 가산이 줄어들면서 성수의 지인 중 상당수는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소속도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녔고, 일부는 삶의 의지조차 잃은 채였다. 그의 친구였던 극작가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도 벌써 3년 전이었다. 성수는 잠시 슬픔에 잠기긴 했지만, 사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연민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불행은, 결국 그 모든 것을 용케 피한 자신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는 성수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만들 뿐이었다. 경성 시내의 모든 이가 성수를 알아보고 그를 존경했다. 지하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만큼은 예외였지만, 어치피 그들은 곧 정부의 단속에 무릎을 꿇을 처지였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성수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천문학적으로 보이는 그의 재산이 꽤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가는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성수 자신도 늘 돈 쓰는 재미를 알았고, 고급 식당이나 옷, 여자에 들이는 비용을 줄일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외동아들이 자신을 본받아 가산을 탕진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을 쓰게 될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들놈은 성수가 했던 그 모든 방탕한 짓거리를 훨씬 더 큰 규모로 벌였을 뿐 아니라, 도박과 아편이라는 새로운 폐해까지 더했다. 성수는 이미 부유한 마을 두어 곳과 그에 딸린 농지 가격에 맞먹을 만큼 막대한 아들의 빚을 갚아준 터였다. 이제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구분’에 관해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레비스트로스이다. 그는 “어떠한 분류도 카오스보다는 낫다”라는 탁견을 남겼다. 나도 이 말에 동감한다. (…) 인간들의 사회는 다양한 ‘만들어 낸 이야기’로 분절화되어 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그것은 카오스에 단락을 넣고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차이를 넘어서는 커뮤니케이션’, 즉 증여와 우애를 동기 짓기 위함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것, 그것이 다양한 레벨에서의 ‘차이’의 인류학적인 효과이다. 인간이 만든 제도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간파한 상태에서 사회 제도에 관해서 생각하고 싶다. “옛날부터 있는 제도이므로 사수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에도 “옛날부터 있는 제도이므로 바로 없애 버리자”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에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 박동섭, 『심리학의 저편으로』
“그것은 한국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겪어도 줄곧 잊고, 용서한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 용서했다 믿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당하지 않은 척 체면치레를 하며 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 김진명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네크라소프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 - 솔로몬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인물) 세계화 시대의 황혼 속 젊은이의 해외여행 고찰 (3) 2024.09.02 (가려읽기) 사람은 원래 아날로그다 ∿ 요로 선생님 (0) 2024.08.23 (가려읽기) 프라우다와 인스타그램 (0) 2024.08.10 (유인물) 학교 교육의 폭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0) 2024.08.10 (발췌독) 자기 주제를 파악한다는 것 (0) 202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