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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세계화 시대의 황혼 속 젊은이의 해외여행 고찰인용 2024. 9. 2. 08:09
Self-improvement is masturbation. Now, self-destruction... - 타일러 더든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 리틀 헝거는 물질적으로 굶주린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 이창동
요즘의 많은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완벽한 연주가 중요한 목적의 하나가 된 듯하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악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을 척척 해결해내는 솜씨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연주라고 해서 연주의 기준이 낮았다는 뜻은 아니다. 후보작 열 편을 들어봐도 하나같이 지극히 높은 수준의 연주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연주자들은 악기 연주 기법 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최고 수준에 올라서 있지만 그럼에도 개성이 담긴 독해를 모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어가 의사소통의 제1수단으로 세상을 지배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 음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일상적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수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것이 작금의 추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언어 구사 스타일과 어휘를 선택하는 미묘한 뉘앙스는 어떻게 되고 말았는가? 아니, 심지어 문법의 정확성은 또 어찌 되고 말았는가? 이제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는 말인가? 그 어느 언어(음악을 포함하여)건 간에 고작 기법적인 면만 알아가지고서야 깊은 곳까지 더듬으려는 노력이 없는 발화(發話)가 될 뿐이요, 듣는 이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없는 연설이 될 뿐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어적 지평이 오직 영어로 제한되면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다른 언어로 기록된 보물들을 알아볼 눈을 잃고 만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들 하는데, 치러야 할 값어치가 너무 무겁다. 음악을 해석하는 자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함축’을 간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이전 세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놀라운 독법이 (몇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믿기 힘든 성취로서 언제나 기억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달통한 악기 연주 솜씨가 아니라 ‘말을 걸어오는’(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저술한 책이 떠오른다)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다. 과거의 많은 연주자들은 그들의 소리로 뭔가 중요한 것을 ‘말’했다. 그들의 연주는 굉장히 가다듬은 연주 기법의 과시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신세대의 연주는 한 점 흔들림 없이 강고한 수준에 올라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스타들’의 악기 장악력과 능숙하고 눈부신 연주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음악의 ‘내용’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내용은 시간을 초월하는 법이다. 작품이 창조된 그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역시 ‘살아 숨 쉬는’ 것으로서 연주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요즘의 연주에 뭔가가 부족하다 싶은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많은 연주자들이 악보 뒤로 ‘숨어버리는’ 것만 같다. ‘천상의 소리’로 말하고픈 열망이 뚜렷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한’ 연주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빈 깡통처럼 ‘내실은 하나도 없고’ 작품의 핵심인 메시지를 움켜쥘 수준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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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자신은 학교 덕분이 아니라 학교를 다녔음에도 인생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예술은 편안하게 기댈 만한 것이 있는 곳에서는 시작될 수 없다. 외부에 의존해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정당한 방식이든 아니든) 이미 ‘출세’하고 인정받은 사람들의 꽁무니를 좇으려는 곳에서도 시작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그저 화려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야 진정한 예술을 찾을 수 있다.
그 깊은 ‘층’은 요행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맥이나 여론의 조작, 타인의 질투를 받을 만큼 성공한 이들의 호의로 얻어질 수도 없다. 또 성공한 이들을 모방한다거나 피상적인 모습으로 승부를 걸고 유혹한다고 해서 그 깊이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젊은 연주자는 반드시 자기 확신, 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편 믿음이 때로는 착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 또 믿음은 정성과 노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 대가의 도움은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충분히 받을 만한 것 같은데도 기회가 한 번도 주어지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러니 기회가 선물처럼 주어진 이들은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나 물질적인 측면으로 그 감사가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언제가 됐든 ‘진짜’ 후배 음악가들에게 그 기회를 베풀겠다는 의무감을 갖는 것으로 감사를 대신하면 된다.
나의 운명적인 선물은 위대한 예술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께 8년 동안 사사하며 그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난 그분의 감동적인 말씀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기돈, 자넨 이제 내 제자가 아니라 내 동료일세.” 요즘은 그처럼 진정한 스승이라 부를 만한 고결한 인물을 만나기 힘든 것 같다.
난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 자기만의 특징, 자기만의 길을 찾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과제이다.
진정한 오르페우스가 되고자 한다면 사랑을 찾아 나서고 그 길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견뎌내야만 하며, 자신에게 유일한 길잡이이자 순수함과 가치의 척도인 에우리디케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음향과 침묵만이 이 목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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