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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되면 읽어야 할 책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12. 22:04
어렸을 적에는 ‘자신이 태어났던 이전 시대’가 단순히 막연한 시간의 지평선에 지나지 않았다. 쇼와 전반기, 다이쇼, 메이지, 막부 말기도 하나같이 ‘옛날’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옛날’이 차별화되게 되었다. 자신이 태어나기 직전과, 생년의 50년 전, 생년의 100년 전의 차이가 피부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옛날’의 해상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에 따라 개인적인 법칙을 하나 떠올려냈다. 개인의 감상이므로 일반성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거니와, 말하자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대한 상상력의 지평은 실제 연령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라 미안하다.
요는 ‘10세 아동은 자신이 태어나기 10년 전까지, 20세 성인은 자신이 태어나기 20년 전 쯤까지의 옛날에 대해서는, 대략 어떤 시대였는가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적용해, 50세라고 쳐서, 생년 50년 전(필자의 예를 들면 50세 때 1900년, 메이지 33년)에 대해서라면, 그 시절 사람이 어떤 것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가 대충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메이지 33년으로 말할라치면, 의화단 사건이 발발하고,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지하철이 개통되었으며,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을 떠나고,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판했던 때이다. 의화단 사건에 대해서 필자는, 시바 고로(의화단 운동 당시 공관 무관 - 옮긴이)가 쓴 책을 읽는다든지, 찰턴 헤스턴과 이타미 주조가 나온 <북경의 55일>도 보았다. 파리에서 탔던 지하철 역의 많은 수는 파리 만국박람회 때와 같은 향취가 잔존해 있었다. 소세키가 품은 런던에 대한 불쾌함은 소세키 자신으로부터 잔뜩 배웠다. <꿈의 해석>은 학생 시절에 노트에 적으면서 읽었다. 그렇게 나열해나가다 보면, 50세 때는 태어나기 50년 전까지가 ‘수용 능력’이라는 말이 된다.
초장이 길었는데 아무튼, ‘50세가 되었는데 한 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요청을 받은 고로, ‘50세가 된 덕분에 수용 능력 범위 안에 들어간 책’, 즉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쓰여진 책 가운데 고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금년은 2022년이므로, 1922년 경에 쓰여진 책이 ‘50세가 되어 읽어야 할 책’으로써 적당하지 않겠는가.
공교롭게도 1922년은 모리 오가이가 세상을 떠난 해에 해당한다. 만약 오가이의 책을 이제까지 읽을 기회가 없었던 분이라면,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오가이를 체계적으로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할아버지 할머니> <간산짓도쿠> <다카세부네> 등은 짧으므로 금방 읽을 수 있다. <아베 일족> <오키쓰야 고에몬의 유서>도 역사 소설이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시부에추사이> 같은 사전(史傳)은 비교적 까다롭기는 하지만, 현대 일본인의 국어력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리 오가이가 별세하기 1년 전 1921년은, 표트르 크로폿킨이 별세한 해이기도 해서, 크로폿킨도 좀 벗어나기는 했지만 ‘수용 능력 범위 내’에 두어도 좋다. 다행히 <상호 부조론>과 <어느 혁명가의 추억> 등이 신판으로 나와서 입수 가능하다. 혁명가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우리는 더는 그 모습을 알 수 없다. 그런 경우에는 혁명가 자신이 쓴 글을 읽을 수밖에 없다. 크로폿킨을 읽으면, 혁명가란 사람이 얼마나 활기 넘치고 낙관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라면 관헌의 수배를 받는다든가 지하 활동을 해도 상당히 즐거울 것이라고 본다. 확실히 그렇지 않으면 시민 혁명은 불가능하다.
도움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책 고르기 방법도 있다는 것을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2022년 2월 21일)
(2022-12-29 13:0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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