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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의 미중론(美中論)> 서문: 곤란한 문제를 다루는 곤란한 방법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29. 21:43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이번에는 미중론입니다.

    제가 주관하고 있는 ‘가이후칸 야학 연구수업(원제: 凱風館寺子屋ゼミ - 옮긴이)’에서 얼마 전 1년간 ‘미국과 중국’을 테마로 다룬 연구 수업을 했고, 그때 제가 한 발언을 활자화해 대폭 가필한 책입니다.

    연구 수업에서는 매번 수강생 한 명이 강연 주제를 골라 발표합니다. 그에 대해 제가 30분 정도 코멘트를 하고 나면, 다같이 토론을 합니다. 이러한 형식은 20년 전의 대학원 시절 연구 수업과 바뀐 게 없습니다. 제가 2011년에 대학에서 퇴직하고 나서, 연구 수업 개최장소가 대학교 강의실에서 합기도 도장으로 옮겨왔을 뿐, 화요일 다섯 시라는 개최 시간은 그대로입니다. 참가하는 수강생은 많이 바뀌었는데, 그럼에도 ‘하산’할 때까지 평균 5년 정도는 재적해주고 있습니다(처음부터 줄곧 이수해주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사전에 발표자에게 어떤 내용으로 발표할 것인가를 묻지 않습니다. 당일 발표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말합니다. 발표 그 자체에 대해 평가나 심사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코멘트는 발표의 잘함이나 못함에 대해서가 아니라, ‘얘기를 듣는 중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대해’입니다. ‘근데 발표 내용을 듣다 보니까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라는 말을 합니다. 경험적으로 이것이 가장 연구수업을 생산적으로 이끄는 방식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토론에 참가하는 수강생들은 전부 제 방식을 답습하여, 줄을 이어서 ‘얘기를 듣다 보니 떠오른 생각’을 말합니다. ‘지금 떠오른 생각’에는 발표 주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간에 등장한 고유명사라든가, 인용된 문헌 속 한 줄 같이 ‘그러고 보니’ 라는 한 마디만 모두에 붙여주면 무엇을 얘기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당초 발표하려고 했던 예상과는 다른 ‘삼천포’로 이야기가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발표 시작 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화제로 이제는 모두가 시끌벅적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연구 수업의 전개를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물론 ‘그런 게 맘에 든다’는 것일 뿐, 이것이 ‘올바른 연구 수업의 진행방식’이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여느 대학 선생님이 들으면 아마도 ‘이런 건 연구 수업이 아니라 그냥 잡담이다’하고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연구 수업에서 목표로 두는 점은, 어떤 테마에 대한 유용한 지식을 몸에 익히는 것이라기보다는, 수강생들에게 지적 고양감을 경험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 수업 발표에 대해 ‘심사’나 ‘평가’라는 걸 하지 않습니다. 수강생들은 딱히 학점을 딴다든가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닙니다. 모두 일이 있고 바쁜 신체일진대 그 귀중한 시간을 쪼개 가이후칸까지 와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경험 못 할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듣고서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챙겨가는 것도 유의미하기는 합니다만, 그 이상으로 ‘그러고 보면’ 을 필두로, 자신의 기억 속 아카이브를 점검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잠깐만 기다려봐,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 딱 생각난 게 있어. 그게 뭐였지...’ 하는 식으로 자신의 기억 속에 침잠하는 것은 지성의 활성화에 있어서, 매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 아카이브에는 원리적으로, 태어나서부터 보고 들어온 모든 정보가 수납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표층에 있는 ‘즉시 꺼내 쓸 수 있는 기억’과는 별개로 ‘그런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기억’이 그 아래에 펼쳐져 있습니다. 아주 깊게,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기억’의 장대한, 보르헤스의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그러한 영역을 우리는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용량은 개인차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기억’만을 ‘자신의 기억’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기억’이 그 아래에 심원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보통은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물론 활용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러한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추리 소설에서 명탐정이 수수께끼를 풀 때는 대체로 ‘자신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문득 기억해내는’ 식으로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명탐정이 응시하며, ‘아니, 이건 전에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어디였더라’ 하고 기억을 찾아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연관성’을 발견합니다. 많이들 보셨잖습니까.

    예전에 이따금 <다이하드 3>를 봤는데요(아마 5번 정도), 존 매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가 은행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에서, 뉴욕 경찰 형사를 사칭하는 남자가 지니고 있는 배지에 적힌 네 자리 숫자를 보고서는, ‘아니, 이건 전에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하고 기억을 훑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매클레인 형사는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거의 죽지 않는(die hard)’ 형사인 것입니다.

    평범한 경관과 천재적인 탐정을 구별짓는 것은, 이러한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는 그러한 기억 활용술의 천재입니다. 하지만 이 능력은 이야기 속 탐정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훈련에 의해 상당한 정도까지 개발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누군가가 ‘잠깐만. 얘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라고 말했을 때, ‘어이, 화제를 바꾸지 말라고’ 라며 책망하지 않으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서로 합의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과 자연>에는 ‘지성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엽편이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그의 거대한 컴퓨터에게 ‘기계는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입력합니다. 컴퓨터는 잠시 탈그닥탈그닥 소리를 내며 연산한 결과값을 천공 카드에 찍어 토해냅니다(1970년대 이야기이므로 컴퓨터에는 아직 화면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That reminds me of a story.

    옮기자면, ‘그러고보니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입니다.

    컴퓨터는 ‘지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서, 그 대신 a story를 생각해냈습니다. 아무래도 베이트슨은 그것이야말로 지성의 본래 작동 방식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지성의 가장 창조적인 작동은, 질문과 해답이라는 형식으로 완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음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어떤 한 가지 아이디어를 계기로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는’ 것 가운데 있습니다. 대단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무튼 이 엽편을 읽을 때, 많은 독자의 머리가 ‘질문에 답하는 것 이전에, 인간적인 지성의 사용 방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둘러싸고 고속으로 회전을 시작하여, 몇 가지 story가 독자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음은 틀림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수강생들의 발표 뒤에 제가 ‘얘기를 듣다 보니 떠오른 게 있는데’ 하는 서두에 이어서 말한 얘기를 모아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논문 같은 번듯한 글은 없습니다. 미리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출력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것’이 있기에, 그것을 말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얘기한 것을 활자화해놓은 글을 읽다 보니 보다 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그것을 가필해 이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당해년도 연구 수업 주제는 ‘미국과 중국’이었습니다만, 미국에 관한 수강생들의 발표가 압도적으로 쏠려 있어서, 거의 미국론입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세계 전략과 지정학적 코스몰로지에 관해 다룬 것뿐입니다. 그 점, 상당히 균형이 안좋은 책이므로 ‘미중론’을 참칭하는 것은 양두구육이지만, 중국에 관한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적으므로, 그 점은 용서하십시오.

    그럼, 마지막까지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후기’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2022-12-04 19:2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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