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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30 철학하는 하트먼 상사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17. 07:00

    히로마쓰 와타루가 세상을 떠났다. (1994년 - 옮긴이)

    1970년대 ‘신좌익 운동’에 크나큰 사상적 영향을 끼친 철학자였다고 신문의 사망기사는 보도했다. ‘사상적 영향’은 잘 모르겠지만 ‘Would-be-intelligentsia’였던 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체적 영향’을 끼친 것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70년대 초엽, 젖비린내 나는 관념으로 언어를 짜올리던 소년들이 떠받들던 문체의 스승은 누구보다도 요시모토 다카아키였다.

    ‘필자’, ‘우리들’, ‘실상’, ‘목하’와 같은 요시모토의 사소한 프레이징을 소년들은 남용했다. ‘신좌익’ 운동이 몰락해가는 흐름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정치 소년의 황량한 심정과 요시모토의 말투는 아마 친연성이 있었을 게다.

    그리고 요시모토 문체 고유의 ‘끈적함’에 사람들이 적잖이 싫증을 내기 시작할 즈음, 히로마쓰 문체가 출현했다. 처음으로 <세계의 공동 주관적 존재 구조>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필자는 잊을 수 없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문체에 존재했던 뭔지 모를 숨막히는 생활감이, 히로마쓰의 문체에는 추호도 없다. 요시모토는 화내고, 매도하고, 실실 웃고, 설교하며, 때로는 ‘눈물 젖은 빵’을 먹곤 하던 인간 냄새 나는 사상가였지만, 히로마쓰는 화내지도 않고, 매도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웃지도 않는다. 히로마쓰는 독자에게 오로지 사고의 ‘훈련’을 요구하는 하드코어한 사상가였다.

    아마 히로마쓰는 ‘뇌는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믿었을 것이다. 그가 독자에게 요구했던 것은 ‘뇌의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트레이닝이었다.

    “지식의 과정은 본원적으로 공동주관적인 물상화의 과정이며, 더욱이 이 공동주관성이 역사적 사회적인 협동에 의해 존립해온 이상, 인식은 공동 주관적인 대상적 활동, 역사적 프락시스(실천 - 옮긴이)로써 존재한다” 와 같은 문장을 우리들은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요컨대 <빨간불도 모두가 건너면 파란불>같은 거였구나’ 하고 문득 양지하기까지 허다한 수련의 햇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시모토의 문체가 블루스였다면, 히로마쓰의 문체는 헤비메탈이었다. 전기로 증폭한 고음량에 숨겨진 멜로디 라인, 그 멜로디 자체만 들어보면 상당히 단순한 것도 헤비메탈과 비슷하다.

    하지만 음악 유행과 똑같이, 아마도 70년대는 헤비메탈적인 사상의 문체를 요구한 것이다. 자연 과학의 술어나 철학적 전문용어, 복잡한 한자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마음 깊은 곳’에 꽂히지 않는다, 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쌈박질’이라든가 ‘깽값’, ‘결심’같은 말을 줄줄 읊는 게 분명 창피하지 않아서 그랬으리라.

    정직하게 고백하겠다. 필자는 히로마쓰 와타루의 문체에 충격을 받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매료되었다. 시적 감수성인지 ‘소심함’인지 사회적 부적응성인지를 소주 한 잔과 함께 털어넣기를 갈망하고 갈망했던 필자는, 히로마쓰가 실천하려 했던 금욕적인 지성 트레이닝에 어떤 종류의 상쾌감을 느낀 것이었다.

    여하튼 70년대를 지나며 정치 소년들의 문체에서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영향은 거의 일소되었다. 사람들은 겨루듯 ‘바야흐로 언어 존재의 규명을 통로로 하여 새로운 세계관적인 시좌를 모색함에는 단연코 두려움과 죄가 없을지어다’ 하는 식의 문장을 쓰게 되었다.

    ‘히로마쓰 문체’의 이점은 정서적 끈적임이 없는 것이었으나, 단점은 무엇이었는고 하니 ‘머리가 나쁜 놈이 쓰면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가공하리만치 히로마쓰 이외의 인간이 쓴 ‘히로마쓰 문체’는 아니나다를까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슬그머니 영향을 미치며, ‘재액과도 같은 히로마쓰 문체’는 80년대에 쯤에 들자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저 ‘떼를 지은 단어들’의 하스미 시게히코 문체로 패권은 옮아간 것이다.

    그럼에도 히로마쓰 와타루가 문체에 걸었던 정열에 대해 필자는 지금도 심심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아래에 싣는 것은 히로마쓰 와타루의 <마르크스주의의 논리> 제 1장 목차다.

    아무튼 입 다물고 읽어보라.

    1. 근대 합리주의를 지탱하는 세계이해의 구도
    2. 헤겔식 변증법에서 엿볼 수 있는 삼위일체성
    3. 선험적 관념론의 세계관과 헤겔리안 변증법
    4.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의 논리와 그 세계관

    전부 18자(공백 제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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