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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밧줄 플레이 성애자취재 2026. 8. 14. 10:08
밧줄
어느날 아침 아랫입술 근처에 삐져나온 수염 하나를 다시 밀다가, 갑자기 ‘밧줄’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구르지예프에게 ‘The Rope’라고 불린 여성 제자들의 작은 그룹이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 파리에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이름은 산악인들이 서로의 몸을 묶어 돕는 밧줄에서 왔다고 한다. 세상이 심상치 않던 시절에, 몇 사람이 한 사람에게 배우기 위해 모여 서로를 밧줄로 묶은 셈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 밧줄을 암벽등반의 밧줄로 생각했다. 누군가 먼저 올라가고, 누군가는 뒤따르고, 중간의 사람이 발을 헛디디면 다른 사람들이 그 충격을 받아내는 것. 떨어지는 사람을 구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올라가는 것.
수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수행을 한다고 해서 꼭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조금씩 버리는 일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책 한 권을 좋아한다거나, 어떤 음악을 듣는다거나, 비슷한 문장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잠깐 서로에게 마음을 보낼 때가 있다.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깊이 공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고 지나가는 정도다.
그런데 나는 그 사소함에 아주 조금 신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 마음을 나눌 때,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밧줄 하나가 생기는 것 같다. 물론 그 밧줄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가끔 생각한다. 결국 밧줄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아주 작은 책임이 생긴다는 뜻 아닐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저쪽의 누군가에게 조금은 닿을 수도 있다는 것. 내가 먼저 걸음을 멈추면 누군가가 흔들릴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의 작은 마음 하나가 나를 붙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
요즘은 각자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것 같지만, 어쩌면 완전히 혼자인 사람은 별로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침 산책을 나와 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제 갈 길을 걷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모두 저마다의 밧줄 하나쯤은 잡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그중 하나일 테고.
그러니 아주 낯선 누군가에게라도, 내가 쥔 밧줄을 함부로 놓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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