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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배우는 힘인용 2026. 3. 6. 06:13
배우는 힘

일본 아이들의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든 좋은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중학생이라고 해도 신문 기사나 TV 뉴스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침울해질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학력이 저하했다고 할 때 그 학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말하는 학력이란 시험점수를 가리킨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학력=시험 점수’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험 점수는 수치입니다. 수치라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인의 변화를 살피는 데 참고가 됩니다. 하지만 학력이란 그러한 수치만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학력’이라는 말을 잘 보세요. 풀어서 말하면 ‘배우는 힘’이 됩니다. 저는 학력을 배울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치로 바꾸어서 남과 비교하거나 순위를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닌 거죠.
예를 들어 소화력이 강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밥을 엄청 많이 먹고 나서 쉬지 않고 곧바로 다음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소화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소화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점수화해서 남들과 비교하지는 않을 겁니다.
수면력이나 자연 치유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라도 침대에만 들면 몇 초 내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수면력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이 힘은 건강을 유지하거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도 아주 유용하지만 수면력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랑하거나 순위를 매기지는 않습니다. 다치더라도 곧바로 상처가 아무는 자연 치유력도 살아가는 데 학력 이상으로 중요한 힘이겠지만 그 힘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학력도 그러한 능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힘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입니다.
배움에 얼마큼 집중하고 열중할 수 있는지 그 강도나 깊이를 평가하기 위해서 학력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소화력과 수면력 같이 어제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 얼마큼 바뀌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어제보다 소화력이 좋아졌는지, 일주일 전보다 수면력이 좋아졌는지, 일 년 전보다 상처 치유력이 빨라졌는지. 그 시간 변화를 점검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힘이 성장하고 있다면 지금 살아가는 방식이 올바른 것이고, 힘이 떨어졌다면 지금 삶의 방식 어디엔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정말로 필요한 정보는 남과 비교했을 때의 우열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힘의 변화입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잊은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목청 높여 말하고 싶습니다.
힘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기 삶의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해 고칠 수가 있습니다.
배우는 힘도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파악해야 의미 있는 지표입니다. 그러면 배우는 힘이란 어떤 조건에서 성장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합시다.
배우는 힘을 키우는 첫 번째 조건은 나에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닫는 것, 무지의 자각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배우는 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로 학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물이나 현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고 유명한 사람이어도 학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스스로 스승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배워야 할 것이 있는 줄은 알지만 누구에게 배워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유감스럽지만 학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의욕이 있어도 이것을 할 수 없다면 배움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은 굳이 학교 선생일 필요는 없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제부터 이 사람을 스승으로 삼자고 생각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자고 생각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나 죽은 사람도 스승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딘가 빛나는 사람을 만나면 즉석에서 스승으로 삼고 그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살다 보면 도처에 스승이 있다는 옛 성현의 말을 따르는 겁니다. 단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언제나 안테나의 감도를 높여 스승을 구하는 센서를 작동시켜야 합니다.
세 번째 조건은 가르쳐 주는 사람이 가르칠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배울 마음이 있고, 스승에게는 가르쳐 줘야 할 무엇인가 있다고 합시다. 조건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배움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스승이 가르칠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부터 사제 관계를 그린 이야기에는 반드시 ‘입문’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무예나 비법 등) 배우고 싶은 사람이 달인의 제자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안 된다’고 셀 수 없이 거절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달인 옆에서 온갖 시련을 겪은 끝에 배우고 싶은 마음의 진정성이 전해져 ‘어쩔 수 없다. 제자로 삼겠다’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And vice versa. – 인용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사람은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요?
예를 들어 “선생님 이만큼 돈을 드릴 테니까 딱 그만큼 가르쳐 주세요”라고 돈뭉치를 갖다 바치는 사람은 보통 제자로 받아 주지 않습니다. 스승에게 이익으로 호소하거나 스승을 치켜세워도 안 됩니다. 본디 돈으로 태도가 바뀌거나 칭찬을 들으면 우쭐대고 들뜨는 사람은 ‘스승’으로서 존경할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스승에게 가르칠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은 ‘부탁드립니다’라는 제자의 올곧은 마음, 스승을 올려다보는 진지한 눈빛뿐입니다. 이것은 모든 ‘입문 이야기’에 공통되는 패턴입니다.
이때 제자가 가진 재능이나 경험 등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설픈 경험만 있어서 “저는 이러한 것을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배우고 싶다”는 주문을 스승에게 한다면 역시 제자로서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겁니다.
그것보다는 새하얀 상태가 좋습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에 검실검실 묵의 흔적으로 남기듯 무엇이든 흡수하며 배우는 무구함, 스승의 가르침을 무엇이든지 흡수하는 개방성이 가르칠 마음이 들게 하는 힘이고 제자의 자세입니다.
책에서 만나는 스승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똑 같은 책을 읽어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는(배울 수 있는) 힘에 필요한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반복하겠습니다.
첫 번째 나는 배워야 한다는 스스로의 무지를 절실하게 자각할 것.
두 번째 나의 스승을 스스로 찾아낼 것.
세 번째 스승에게 가르칠 마음이 들게끔 하는 넓디넓은 개방성을 지닐 것.
이 세 가지 조건을 한마디로 하자면 ‘배우고 싶습니다. 선생님 부디 가르쳐 주세요’라는 문장이 됩니다.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성적과 점수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이 말,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학력입니다. 이 말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학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있더라도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학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영어를 못한다든지 수식을 모른다는 종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선생님 가르쳐 주세요’라는 간단한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그 말을 하면 손해를 본 것 같아서 가능하다면 평생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것은 빚을 지는 것 같아서 싫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자존심이 강하다라든지 기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학력 저하라는 사태의 본질입니다.
(인용자: 제가 어디서 듣기로, 힘의 이완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고 합니다. 딱히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역도 선수 장미란 씨가 역기는 “내리는 운동”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 제 신체로도 신인보증을 해야겠군요. 루마니안 데드리프트를 하면 이 말이 더 와닿더라구요.)
배우는 힘을 어떻게 키울까? 그 대답은 이미 제시했습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2011.09.02]
(*여담: 제가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 유통distribution이나 마케팅에도 관심을 아예 안 기울이고 있지는 않답니다. 일본의 ‘오오테-대형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는 T씨는 우치다 선생님을 학생 때부터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살인적으로 바쁜 와중에도 뭔가 고민이나 생각점이 있을 때마다 우치다 선생님의 텍스트를 읽으신다나 봐요. KADOKAWA의 신세를 많이 져서 더욱 T씨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한국의 우치다 윤독회에는 교사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사 고백하는 건데, 저도 어떤 책을 통해 우치다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당시가 2015년이었고 어떤 책이었는지는 정말 기억이 안 나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의 총서류 서가에 배가되어 있던 독서법 책이었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메일 보내주세요.
제가 좀만 일찍 우치다 선생님과 만났더라면, 방황의 시간을 좀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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