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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인용 2023. 11. 8. 14:10
그의 회고록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어린 시절이다. 그 책에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자기 부모를 왜 그렇게 헐뜯었을까? 독자는 그가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해 복수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 부모에게 복수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린 시절이 아무리 불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독한 사람들이었고 불쌍한 아이였던 자기는 그들의 독재를 견뎌내야 했다는 식으로 부모를 공개적으로 욕하는 글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 그러한 행동에는 어딘가 비열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 부모를 비난하는 건 정말 듣기 싫다.
나는 일생을 무위도식자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로 살았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나 자신의 '잠재력'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다.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하고 싶었지만 일을 해야 했다.
말하자면 나는 오직 열심히 일하는 사람하고만 진지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곧 자기 일생동안 열심히 일해 많은 것을 이룩한 사람하고만 대화하겠다는 뜻이다. 할 일 없이 빈들거리는 사람들과는 상관하지 않겠다. 곱슬머리든 대머리든 수염을 길렀건 말끔하게 면도했건 그런 건 상관없다. 하지만 특정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고발인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는 절대 상대하지 않겠다.
여러분, 휴머니스트들을 믿지 말라. 예언자들도 믿지 말고 유명인사들도 믿지 말라. 그들은 돈 한 푼 때문에 당신을 속일 것이다.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그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하라. 단번에 전 인류를 구원하려고 애쓰지 말라. 먼저 한 사람을 구하려고 노력하라. 그 편이 훨씬 더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작곡이 언제나 잘 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장애를 겪는다 해서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고 하늘이나 쳐다보면서 영감이 섬광처럼 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한다. 차이콥스키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서로 상대방을 싫어했고 의견이 일치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한 가지 문제에서는 생각이 같았다. 끝없이 작품을 써라. 큰 작품의 작곡이 잘 안 될 때에는 소품을 써라. 전혀 작곡을 할 수 없다면 무언가를 오케스트레이션하라. 스트라빈스키도 이같이 느꼈을 것이다.
요컨대 마야콥스키에게는 내가 싫어하는 갖가지 종류의 성격이 모두 모여 있었다. 사기성, 자기선전벽, 유복한 생활에 대한 욕심. 그중 제일 큰 문제는 약자에 대한 경멸과 강자에 대한 비굴함이었다. 그는 크릴로프(Ivan Krylov)의 우화에서 한 구절 배운 게 있었다. "강한 자가 볼 때 잘못한 것은 언제나 약한 자다." 그러나 크릴로프가 이 말을 비난조나 조롱 투로 한 데 비해 마야콥스키는 이 구태의연한 이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입각하여 행동했다는 차이가 있다.
(...) 여기서 내가 문제삼는 것은 재능이 아니다. 재능은 추상적인 문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입장이다. 푸시킨은 잔혹한 시대에 살면서 시를 써서 자유를 찬양했고 낙오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를 호소했다. 마야콥스키가 추구한 것은 그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 결국 누구나 시민이 될 수는 없지만 시민 노릇은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마야콥스키는 시민이 아니라 스탈린을 충실하게 섬긴 아첨꾼이었다.
음악은 한 인간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조명해준다.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며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반쯤 미쳤고 짐승이며 〇〇인 스탈린조차도 음악 속에서 그런 면모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는 음악을 두려워하고 싫어한 것이다.'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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