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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Sleep with problem인용 2026. 8. 23. 21:24
오길비: 조금 긴 번역하러 가려고 합니다. 몇 달 걸릴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 그분은 내 원고지 몇 매를 읽다가 휙 내 얼굴에 집어 던지면서 짜증 섞인 음성으로 “이걸 번역이라고 했어요?”라고 내뱉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모욕을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건데 헤매는 게 당연한 거 아냐?’하는 생각에 그냥 나가 버릴까 하는 충동도 순간적으로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내 원고는 내가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지들을 모은 뒤 벌게진 얼굴로 공손히 말했다.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이 플래처 선생과 다른 점은 아주 무뚝뚝했지만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내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종로서적에서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고영민 목사가 번역한 조직신학 책과 그 책의 원서를 동시에 구입했고, 번역문을 원문과 한 문장씩 대조하며 한 달 이상을 철저히 혼자서 나만의 게임을 했다(원서 저자가 ‘루이스 벌콥’이었는지 ‘찰스 하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서로는 두 저자의 조직신학을 모두 읽었다). ... [세이노]
(...) 랑송 책을 읽고 있으면 원본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원 수험생이 울며 기뻐하는 참고서였습니다.
랑송은 명문장가이므로 랑송을 읽고 '중요한 문장'을 뽑아 노트에 베껴 암기하면 문학사 공부와 장문 독해 공부와 작문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자나 깨나 랑송을 읽고 써서 베끼고 암기하며 2년 동안 시험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도 기초 실력의 부족을 메우기 힘들었기에 1975년, 1976년, 1977년 대학원 입시에 3회 연속으로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동안은 쉼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했습니다. 가정교사도 하고 번역도 해서 간신히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오직 방에 틀어박혀 랑송을 공부한 2년이라는 시간!
옆에서 보면 괴로울 것 같겠지만, 본인은 매우 유쾌하게 지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그로센딕이 나치 독일군 폭풍 속을 어떻게 탈출하여 프랑스로 건너갔는지, 몽펠리에 대학에서 어떤 교수에게 사사하고 수학의 재능을 발휘했는지, 그리고 고등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이 될 때까지의 경력은 어떠한지 등은 거의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유태계 태생이며, 당시 국적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로센딕이 수학에 거는 집념이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집념이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의 연구 자세를 보면서 아마도 그것은 그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역경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로센딕에게서 특별히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고, 설령 내가 들었다고 하더라도 수용소에서 단신으로 프랑스로 도망쳐 국적도 없이 외곬으로 수학 인생을 살아온, 그의 가혹한 고투의 역사를 직접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이 보면 피땀 흘린 고생이지만 그로센딕 자신은 단 한 번도 고생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대학시절에 돈이 없어서 책을 살 수 없어, 방학이 되면 교수의 책을 빌려 고향에 돌아가서 대학 노트에 옮겨 적던 일, 또는 대학 모자를 살 돈으로 책을 산 일이나,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 갔을 때 다른 사람들은 수영 팬티를 입고 있었지만 나만 훈도시 차림이었던 일이나, 대학 학부와 대학원 7년 동안 1.5평짜리 조그만 방 한 칸에서 하숙하고 사과 상자를 책상으로 써서 그 밑에 책을 놓고 사용하던 일, 요와 이불이 겉감이 없는 얇은 솜뿐이었던 일 등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생하셨네요." 하며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런데 정작 장본인인 나는 고생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고생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동생에게 가끔 송금해야 되는 일도 있고 해서 실제 가난한 학창생활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별로 고생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문제와 함께 잠자라
나는 그 후 수개월에 걸쳐 노력해 보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무렵 하버드 대학의 보트(Bott) 교수가 했다는 말 한 마디가 인상 깊게 들려 왔다. "문제와 함께 잠자라(Sleep with problem)."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그 문제와 함께 생활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다.
나는 그 동안 말 그대로 특이점 해소라는 문제와 함께 잤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문제의 어려움만 깨달았을 뿐이다. 그야말로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 그로센딕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열변의 대부분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대꾸를 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입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말이 내 이야기에는 거의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는 좋은 증거였다.
그는 "4차원의 특이점 해소가 거짓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하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
그러나 이렇게 기를 죽이는 일이 겹치는 반면에 나를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리스키 선생님이었다.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하버드 대학의 세미나에 출석하고 있었던 나는 어느 날 교내에서 자리스키 선생님과 만났다. 나는 그가 여전히 바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사말만 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세우고 "지금 뭘 하고 있나?" 라고 물었다. "특이점 해소의 문제를 재고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물기 위해서는 이를 단단히 하라(You need strong teeth to bite in)."고 말하고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이빨을 단단하게 하라는 말은 자리스키 선생님 특유의 유머이다. 즉 이를 악물고 풀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니까 이를 아주 단단히 해놓으라고 충고한 것이다. 자리스키 선생님은 자기 자신이 연구해 온 문제인 만큼 틀림없이 특이점 해소의 중요성을 숙지하고 계셨을 것이다. 어쨌든 고마운 격려의 말씀이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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