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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유노모리 학원 창립 40주년 기념 강연 “교육과 자유”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1. 25. 19:28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번에 연단에 서게 된 우치다 다쓰루라고 합니다. 사이타마 한노 시까지 오게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소개해주신 바와 같이, 저는 고베에서 ‘가이후칸’이라는 무도 수련 도장과 배움터를 꾸리고 있습니다. 우리 도장에 9년 전 입문하신 이데 군, 오카노 씨 부부가 있습니다. 이데 군은 저를 위해 IT 담당 비서를 맡아주고 있습니다. 오카노 씨는 올해 5월부터 서생으로 일해주고 계십니다. 가이후칸에는 현재 서생이 5명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신진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맺고 있는 두 사람이 이곳 지유노모리 학원 졸업생인지라, 이번 40주년 기념 강연에 초청받게 된 것입니다.

     

    지유노모리 학원 창건 4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졸업생 재학생 할 것 없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주셨다는 건, 그만큼 모교에 애정이 깊기 때문일 겁니다. 저희 문인 두 명도 멀리 고베서부터 오늘 여기까지 와주었습니다. 이미 졸업한 학교를 위해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마음을 쓸 수 있다는 건 여간해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제가 졸업한 학교에 어지간히 애착이 없습니다. 대학에서 기부 요청문이 와도 안 읽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입니다. 딱 한 번, 모교 문학부에서 충원에 애를 먹고 있는지라 ‘물타기’를 좀 해야 하겠기에 ‘문학부에 진학해 줍시오’ 하는 광고 전단을 만들게 되었으므로 부디 출품을 희망한다는 그런 발주에 참가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모교에 뭘 기여한 게 없습니다.

     

    몇 명쯤 괜찮은 친구를 사귄 것 말고는 ‘아, 이 대학에 다녀서 정말 다행이다’ 했던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 어떠한 은혜도 못 느낍니다. 그러한 인간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졸업생들이 모교에 대해 이렇게까지 강한 애착,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건 바로, 여기서 이루어졌던 훌륭한 교육의 성과에서 비롯한 듯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고베여학원대학이라는 곳에서 교사로 봉직한 바 있습니다. 고베 여학원은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설치된 여학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역시 졸업생들의 애교심에 깜짝 놀랐습니다. 몹시 조그마한 학굡니다만, 유구한 역사에 힘입어 동창회원이 3만명 가까이 됩니다. 3만 회원 분들께서 학교의 방향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창생이 모교의 교무나 경영에 관해 발언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창생은 ‘모교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졸업한 학교가 나중에 점점 바뀌고, 캠퍼스가 이전하고, 커리큘럼이 바뀌며, 졸업한 학과나 학부가 사라지는…. 그런 일을 동창생은 바라지 않습니다. 학교 경영자는 비즈니스맨 특유의 야성적 본능에 따라 그런 식으로 ‘시류에 영합’하고자 하는 반면, 동창회 구성원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겁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자신이 졸업한 학부나 학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당신이 받았던 교육에 의미는 없었다. 시대착오가 되었단 말이다’ 하고 졸업생을 향해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졸업생을 앞에 두고 ‘당신네들이 받았던 교육은 이제 사회적 유용성을 잃었소’라고 고지하는 일은, 교육기관으로서는 원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거든요. 분명히 학과나 학부를 폐지하거나 신설하는 일이란 게 피할 수 없는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놓고서 학교 측은 모종의 ‘염치’를 느껴야 한다는 겁니다.

     

    학교라는 것은 우자와 히로후미 선생에 따르면, 소위 ‘사회적 공통 자본’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회적 공통 자본’이란, 집단이 존속해 나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서, 전문가에 의한 전문적 지견을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운영되어야만 합니다. 종류로는 대기, 토양, 해양, 하천, 호수, 삼림 등의 자연환경이 있겠고요. 다음으로는 사회적 인프라가 있습니다. 상하수도, 교통망, 통신망, 전기와 가스입니다. 이들 역시 안정적으로 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류 중 하나로 사법, 행정, 의료, 교육 등의 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또한 집단이 존속해나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사회적 공통 자본은 급격하게 변화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변화하기는 하지만, 느릿하게밖에는 바뀌지 않습니다.

     

    정치와 경제 같은 경우에는 변화가 급격하기 마련입니다. 정치와 경제는 ‘복잡계’이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복잡계’란, 미미한 입력 변화에 의해 극적인 출력 변화가 일어나는 시스템을 이릅니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캘리포니아에 허리케인이 일어난다’는 식의 비유가 곧잘 쓰이는데, 이렇듯 작은 입력 변화가 커다란 출력 변화를 도출해냅니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입니다. 모두 거기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개인의 참여에 의해 경우에 따라서는 정세나 시황이 일변하는 경우가 있으니 재미가 없을 수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게 좋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그밖의 인간 행위는 반드시 정치나 경제와 같은 복잡계라고는 할 수 없으며, 또한 복잡계여서는 안됩니다. 미미한 입력 변화에 극적으로 시스템이 바뀌면 그야말로 심각해지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허다하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행정, 사법, 의료, 교육 등등이 그렇습니다. 정권 교체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바뀐다든가, 주가가 내려가면 교육 커리큘럼이 바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문제가 됩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혁명이 일어나도 전쟁이 터져도, 수도관에서 물이 나오고 지하철이 제시간에 오기를 은근히 바라는 법이거든요. 어떤 섹터에서는 있어도 상관 없는 무언가임에도, 그것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분야 역시 또한 존재하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도통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은 알아먹지 못하는군요. 그들은 사회의 변화라는 것은 균일적으로 모든 섹터에 영향이 미치는 법이라고 여깁니다. 정치 과정이나 경제 활동에 변화가 일어나면, 그에 발맞추어 다른 시스템도 전부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교육과 관련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건 정말로 채신사납지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어째서 교육은 안 바뀌냐’는 거예요. 이런 도당들의 으름장을 교육현장은 지리하게 수용해 왔습니다. ‘매우 경직적이다, 매우 보수적이다, 어째서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지 않고서는 허구한 날 그런 교육을 끼고 있냐’고 말이죠. 하지만 교육은 본래 ‘타성이 강한 시스템’입니다. 느릿하게밖에는 바뀌지 않아요.

     

    그 사실을 가르쳐 준 건, 스와 데쓰지라는 분입니다. 오래 전 『소황제가 되어가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쓰신 분입니다. 이분이 아마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을 하셨을 텐데요, 이런 스와 선생님을 제가 젊었을 때 인터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스와 선생님이 ‘교육은, 타성 강한 제도라 원래 그런 겁니다’ 라고 말씀하셨던 게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나중에 우자와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감심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교육은 타성 강한 제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변화하기는 합니다만, 느릿하게밖에 바뀌지 않아요. 급격한 변화는 거부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문부과학성, 기업계, 혹은 미디어로부터 ‘바꿔, 바꿔’ 하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습니다.

     

    아까도 대기실에서 스가마 마사미치 교장 선생님과 얘기한 것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사회가 온통 다 그렇습니다. 이래저래 압도적인 추세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급격한 변화에 ‘캐치업’하라는 압력이 들어옵니다. 그걸 수용하는 학교 측도 결국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든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서 필사적입니다. ‘무엇을 위해 변화해야만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잊고서, 만사 다 제치고 시대가 이러이러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이 이러이러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과정이나 경제상황이 이러이러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부합하여 교육도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고 죽을 힘을 다하는 겁니다. 그러한 강박관념이 교육 현장에도 고강도로 퍼져 있습니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그럼에도 문부성이 방파제가 되어 정재계 측의 ‘교육을 바꾸라’는 압력에 저항해 주고 있다 합니다. 분명히 방파제 역할은 해줄지언정, 그러나 현장에서는 반드시 ‘문부성 라인’으로 지시가 들어온다는 게 실상입니다. 새로 등장한 기술을 가르쳐라, 새로운 가치관을 가르쳐라 하는 식으로요. 학교에서 금융 관련 지식을 가르치라는 요청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런 고비고비가 닥칠 때마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소위 ‘인재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재’를 육성해 출하하라고 저 양반들은 학교 현장에 요구하고 있건만, 그 ‘인재’란 것의 ‘스펙’(산업상 필요 성능 - 옮긴이)이 항상 어물쩍 바뀌곤 하는 거예요. 거의 한 해 걸러 바뀌다시피 해요. 그때마다 거기에 맞춰 학교의 교육 과정을 바꾸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법입니다.

     

    저는 사립학교가 그 시스템적 설계를 손대야 할 때 꼭 참조해야 할 것이, ‘건학 당시의 이념’이라고 봅니다. 주안점을 둬야 할 곳은 ‘건학 이념’이지 현재 시점의 ‘사회적 니즈’ 따위가 아녜요. 잘 생각해 보세요. 건학했을 당시에는 학교에 아무런 ‘자산’(원문 手持ち - 역주)이랄 게 없었으니만큼요. 우선적으로 재학생 자체가 없습니다. 졸업생도 아직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 학교가 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짊어지는 집단인지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적 이상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학 당시에는 ‘사회의 니즈’란 게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졸업생에게 기대하는 사회의 니즈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건학자들은 교육을 일으켰습니다.

     

    고베여학원은 메이지 시절인 1875년에 창건되었음으로 이제 150년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원래는 미국에서 건너온 탤콧과 더들리라는 두 여성 선교사가 고베에 개교한 작은 학당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두 선교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해 일본에 왔습니다. 그런데 출항 시점 당시에는 막부가 종교를 엄금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의 니즈’ 차원이 아니예요. ‘접근 금지’ 취급을 받는데도 온 것입니다. ‘사회적 니즈’가 아예 없기는커녕 마이너스에 가깝겠군요. 그러나 오지 말라고 해도 가고 싶었던 겁니다. 아무 조건 없이 가르치고 싶고 전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고베에 조그마한 학당을 세웠는데, 그곳에 한두 명씩 시나브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어느덧 1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건학 시점에서 ‘사회적인 니즈’가 전무했다는 점은 매우 반향적입니다. 수요는 없지만, 대신 ‘가르치고 싶은 것’은 있었습니다. ‘전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요. ‘이러저러한 교육을 해주시오’ 하는 수요가 있고 거기에 응해 ‘예 알겠습니다’ 무슨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치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사립 학교 교육이 시작된게 아니란 말입니다. 일본 대학의 75퍼센트가 사학입니다. 이 사학이 본질적으로는 거의 다 그런 거예요. ‘가르치고 싶은 것’이 먼저 있었기에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서도 하지 않는 교육’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달리 어디에서도 하지 않으니 스스로 하고 싶은 교육을 위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습니다. 게서부터 일본의 사학 교육이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니즈’라는 그 단어가 어느 시기부터 말이죠, 90년대 후반부터였나요? 그때부터 교육 현장에 부쩍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마켓의 니즈’가 어쨌느니 저쨌느니 하고 교수회에서 들고 나오는 축이 등장했습니다. 그런 마케팅 용어도 그렇고, ‘품질 보증’이 ‘공정 관리’니 하는 공학 용어로 교육을 논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심 이건 아닌데 했습니다. 만약 사회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학교 교육이 존재하는 거라면, 일본의 사학 대부분은 지금 흔적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이오 대학은 ‘으뜸 가는 사학’입니다.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에게 ‘사회적인 수요’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쇼기타이가 벌인 난리통 속에서, 장안이 자칫 불바다가 될 뻔한 바로 그때에 후쿠자와 유키치는 영어로 된 경제학 교과서를 읽으며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쿠가와 시대의 향교는 이제 교육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새로 들어선 정부는 아직 학교를 만들 여유가 없습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현재 일본에서 견실한 고등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은 게이오기주쿠 단 한 곳뿐이었다고 술회합니다. 이런 반사회성이 저는 매우 맘에 들어요. 온 세상에 미더운 교육을 하고 있는 건 우리 뿐이다 하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다들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겁니다. 떡고물에 팔랑귀에 우왕좌왕하는 형국입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유유히 경제학을 설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의 어지러운 상황과 섣부른 기대감에는 아예 신경 끄고 할 일을 하는 것, 그게 학교 교육의 의의라는 겁니다.

     

    후쿠자와는 젊었을 때 항구 도시 오사카의 오가타 주쿠에 속해 화란어 문헌을 읽은 바 있습니다. 철학서를 읽고, 공학과 화학 서적을 읽었으며, 의학과 약학 서적을 읽었습니다. 앞뒤 안 가리고 난학서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물론 그런 지식이나 기술에 관한 ‘시장 수요’는 에도 시절의 일본 사회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집념으로 읽은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집념을 가지고 읽었느냐 하면 ‘굉장히 어려운 책’을 읽고 있는 건 일본을 두루 둘러보아도 우리들밖에 없다 하는 그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의식과는 살짝 달라요. 왜냐면 엘리트 의식은 본디 기존의 지배계급, 상위층에 위치한 인간이 가지기 마련이니까요. 오가타 스쿨의 빈한 서생은 계급 사다리에 낄 수 없습니다. 시류에 단호히 등을 돌리고, 돈 나올 구석도 없는, 출세와도 거리가 먼 학문을 하고 있는 이 한 몸 ‘얕보지 마시라’하는 괴롬 섞인 프라이드만 갖고 와신상담하며 가난과 굶주림을 견디었다, 그렇게 후쿠자와는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운다는 사람의 기개란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히 팔방을 수소문해 보았건만, 이런 괴괴한 연구를 하는 놈은 나 혼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는 식의 단정치 못한 품행이야말로 지적 긴장감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편인 셈입니다.

     

    학교 교육 역시 그래야 한다고 봐요. 세속 친화적이면서 사회의 니즈에 딱 들어맞는 교육이나 하는 학교 따위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이를 꽉 깨물고, 세상 사람들이 ‘도대체 당신네들은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있냐’ 하고 백안시할 만한 교육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학교에 기개가 있으면 그게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반드시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일본에서 이런 이상한 교육을 하는 학교는 우리 모교밖에 없다. 이런 학교는 우리 손으로 사수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 그런 모양새로 학교를 운영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규모가 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작은 학교여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일본의 인구가 점점 줄어들 것이니만큼, 조그마한 사이즈여도 문제없습니다.

     

     

    오늘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얘기할 주제가 많을 것으로 생각해 이곳에 온 참입니다. 고교생을 앞에 두고서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얘기를 마련해 왔는데, 와 보니 관객은 어른들로 가득한지라, 준비해 온 얘기는 관두기로 하고, ‘교육과 자유’라는 제목을 가진 강연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떻게든 될 줄로 압니다.

     

    초장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교육과 자유’는 궁합이 나쁩니다. 애초에 ‘자유를 교육’한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군요. 주체성이란 게 애초에 배울 수 있는 것일까요, 자립이 배울 수 있는 무언가일까요, 자유를 어디 가서 배울 수 있는 걸까요. 뭐가 되었든 가르친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자득하게끔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아도 자득이란 걸 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놓을 수는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할 수 있는 건 그게 최선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유’, ‘자주’, ‘자립’, ‘자재’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자득해낼 수 있는 환경을 구비해 두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지켜보며, 기다립니다. 아마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을 줄로 압니다. 이 주제에 관해선 차차 얘기를 해나가면서 다시 짚게 될 수도 있고, 그러지 않고서 ‘교육과 자유’에 관련해서는 이게 영영 끝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보자, 오늘 고등학생에게 하려고 했던 얘기는 ‘인구 감소’에 대해서였습니다. 이곳 한노 시에 계신 분들 역시 아마도 인구 감소라는 주제를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으실까 합니다. 저는 『인구감소사회의 미래학』이라는 책을 편저한 바도 있고 해서, 인구 감소와 관련된 강연 의뢰가 자주 들어오곤 합니다.

     

    얼마 전에도 기후 현 농협 초청으로 지방의 인구 감소 문제와 농업의 미래 문제에 관해 논하고 왔습니다. 세상 천지 어딜 가나 다 똑같습니다. 한국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고 왔습니다. 매년 한국에 강연 겸 여행을 갔다 오거든요. 재작년에는 한국의 시골 분들이 초청해 주신 바, 산 속에 위치한 일본으로 치면 공민관 비슷한 곳(마을 회관 - 옮긴이)에서 50명 쯤 되는 청중을 앞에 두고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수락한 테마가 ‘한국의 급속한 인구 감소와 지방의 생존전략’이었습니다. 청중의 대다수가 그곳에 사시는 고령자였습니다. 물론 그이들은 제 이름이 뭔지도, 뭐 하는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어째서 저 같은 인간을 일본까지 수소문해 이야기하게 시켰을꼬 생각해 보니, 아마 한국에는 ‘지방의 인구 감소와 생존전략’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이라도 하는 지식인이 없나 보다 했습니다.

     

    한국의 합계특수출생률은 0.68입니다. 무시무시한 감소세입니다. 작년에 0.78이었으므로 1년 사이에 1포인트 떨어진 것입니다. 한편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울 주변만 따져도 전체 인구의 45.5%가 살고 있다는 데이터를 확보해서 그 숫자를 강연에 수차례 갖다 썼습니다만, 이 또한 데이터가 매년 갱신되는 형국이니 45.5%에서 1년 사이에 55.5%로 올라 있었습니다. 1년간 10퍼센트포인트 올랐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저럴까요.

     

    서울 근처에만 있다는 겁니다, 젊은 사람이. 작년에 강연하러 간 부산 말씀입니다만, 부산은 한국 제 2의 도시인데, 일본으로 치면 교토나 오사카 급의 도시입니다. 시내가 되게 좋고 캐주얼했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걸어보니 조우할 수 있었던 부류는 중년과 고령층뿐이었습니다. 거리에 젊은이라곤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어요.

     

    부산대학교는 국립이므로 아직 존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대학들은 차례차례 폐교되고 있습니다. 요 몇 년 사이 4개 교, 그러니까 대학이 폐교되었다 합니다. 대학 폐교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어찌된 영문입니까 하고 물어보니 젊은 사람이 전부 서울로 가버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부산대는 본래 교토대 위상 정도 되는 학교였는데요. 지원자가 급감해 입결이 낮아지는 바람에 지금은 서울 근처의 이류, 삼류대를 쫓아가는 데 급급하다 합니다. 수도에 문화자본이 집중되고 있는 이러한 실태는 일본에서 별로 보도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인구 감소에 관해선, 출산율이 매우 낮아졌다는 점이 종종 보고되고는 합니다만,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게 지방 몰락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그다지 보도되지 않습니다. 인터넷 신문은 다룰지 몰라도, 종합지 같은 데서는 아예 보도하지 않습니다.

     

    이건 현대 일본에서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룰 때 나타나는 언론 보도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문이건 티브이건 반드시 ‘인구 감소 문제’를 떠듭니다. 하지만, 온당한 처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건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라, ‘인구 일극집중 문제’인 거랍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원인은 인구 감소가 아니라, 인구 분배가 쏠려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과소지와 과밀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인구를 전국에 고루 평탄케 하면, 현재 ‘인구 문제’라고 불리는 현상의 대다수가 해결됩니다.

     

    이 점만큼은 한국이 일본보다 한걸음 앞서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 일극 집중 현상입니다. 물론 인구도 줄고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물가도 비싸고, 경쟁이 극심한 서울 언저리에 청년층이 집중되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취직도 잘 안 되고, 결혼도 못하며, 아이도 갖지 않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라, ‘인구 일극집중 문제’입니다. 현재 일본 수도권에 4000만 명 가까이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도쿄,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에 일본 총 인구 가운데 3분의 1이 몰려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선 지방의 과소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노토반도에 지진이 일어났는데도 전혀 복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후쿠시마 재해 복구도 더딘데, 노토 반도는 더욱 심각합니다. 정부 측에는 노토 반도 재해를 복구할 의욕이 없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재난 발생지는 고령화의 진전으로 인구가 줄고 있어서 언젠가 과소지가 될 테니 그런 곳에 복구 비용을 들이는 건 낭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고령자는 가설 주택에 머무는 사이 돌아가시는 형편입니다. 머지 않아 아무도 살지 않게 될 취락으로 통하는 길을 다시 닦는다든지, 파괴된 취락의 수도나 기간 시설은 보수할 필요가 없다는 심산입니다. 오히려 이런 내심을 공공연히 떠드는 정치가도 있습니다.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싶다면(원문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 - 역주) 도시 지역으로 이사하면 된다는 겁니다. 산골 마을을 위해 도로를 내고, 다리를 놓으며, 터널을 뚫을 그럴 비용을 들일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행정 비용의 낭비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대다수 사람들은 여기에 반론을 못한 나머지 어물쩍 긍정해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는 명백히 수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 열도에는 12,500만 명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도 시대 인구가 얼마인고 하면 고작 3,000만 명입니다. 일본 전국에는 276개의 번이 있었습니다. 이 번이라는 게 무엇이냐, 일단 원리원칙상 에너지와 식자재에 관해서 자급자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276개 되는 정치 단위가 저마다 자급자족했습니다. 그 안에서 정치 행위가 이루어진 것인데, 또한 특산품이 있고, 고유 문화가 있고, 기술이 있으며, 전통적인 제례 의식과 예술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인구 3,000만 명 시절에는 가능했었는데도, 12,500만 명 된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설명들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 맞지 않습니까. 에도 시대보다 1억 가까이 인구가 많은데도, 단지 지방이라는 이유로 그곳에선 생업을 영위할 거점 내지는 고유 문화의 창달 거점을 절대 만들 수 없다고 다들 철썩같이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습니다. 에도 시절에는 3,000만 명 가지고서 했던 일들이라는 걸 기억합시다. 1910년대 메이지 시점에서도 5,000만 명 규모였던 것입니다. 이때는 당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도련님』을 집필할 때 소재로 삼았던 러일전쟁 무렵입니다. 현대적 총력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인구가 5,000만 명인 셈이고, 당연히 일본 열도 방방곡곡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생업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역사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야무지게 자원을 분산해 놓으면 인구가 5,000만 명까지 줄어도 멀쩡히 먹고살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안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수도권에만 사람이 모여드는 게 마치 자연 과정인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지역에서 사람이 점차 사라지는 무슨 피하기 어려운 자연 과정인 것처럼 그럽디다. 인구 감소가 태풍이라든가 지진과 같은 재난인 것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마냥 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틀린 주장입니다. 정치의 문제입니다. 100% 정치의 문제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인간의 힘을 가지고서, 인구의 쏠림 현상을 시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전례가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메이지 정부가 한 것 중에 이거 하나 확실히 잘한 게 있다면, 고등교육의 거점을 전국 방방곡곡에 세운 것입니다. 교육 자원을 도쿄로 일극 집중시키지 않고서, 지방으로 분산시켰습니다. 제국 대학(국립대 - 옮긴이)은 도쿄, 교토, 오사카, 나고야, 센다이, 삿포로, 후쿠오카, 타이베이, 경성 이렇게 아홉 개 만들었습니다. 구제 고교도 명백히 교육 자원의 지방 분산에 목적을 둔 정책이었습니다. 구제고교의 배치를 보면 메이지 정부가 굉장히 의식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일고는 도쿄인데, 그 다음으로 만든 이고는 센다이입니다. 센다이는 사실 보신 전쟁 때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거점이었는데, 이를테면 역적의 본거지에 이고를 만든 것입니다. 삼고는 교토, 사고는 마에다 번 가까이에 있는 가나자와입니다. 오고는 구마모토, 육고가 오카야마, 칠고는 조시칸 즉 가고시마입니다. 가고시마는 달리 말하면 사쓰마인데 사이고 다카모리를 위시한 반군의 거점입니다. 팔고가 나고야이며 이로서 소위 ‘넘버 스쿨’은 끝납니다. 그 뒤로는 히로사키, 마쓰에, 시즈오카, 미토, 야마가타, 고치 등 이른바 ‘네임 스쿨’ 16교가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전국에 고등교육의 거점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교육자원의 분산은 명백히 의도적 소산입니다. 센다이, 가나자와, 가고시마, 미토에 구제 고교를 지은 것은 정치적 배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실제로 공공 사업 및 자원 분산 측면에서, 보신 전쟁 이래 반군이었던 번은 홀대받았습니다.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된 게 최초 신칸센 개통 후 반 세기나 지난 뒤였으니까요. 하지만 교육 거점과 의료 거점만큼은, 보신 전쟁 때 관군이었냐 반군이었냐와 상관 없이, 전국에 균등히 설치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이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교육거점의 일극 집중화와는 아주 상반된 정책입니다. 일극 집중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고까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틀림없이 방치는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 겁니다. 방치해 두면, 젊은 사람들은 도시에 끌려들어옵니다. 앞서 나가는 문화를 접할 수 있고, 경제 활동도 활발하며, 고용 기회도 많습니다. 젊은 사람이 도시로 끌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구의 도시 일극 집중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자원을 지방에 분배하는 것이며, 특히 교육 자원과 의료 자원의 지방 분산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전국 어디에서 살더라도, 의료와 교육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는 체제를 정비하는 것입니다. 지방에 살아도 충분히 질 높은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번듯한 의료 기관에서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 조성은 정치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고 나서 즉시 지방을 외면할 것이므로, 이렇게 된 이상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 그리고 의료의 거점을 만들어 두면, 어지간한 인구는 모여듭니다.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지방에는 지역 차원의 고용을 창출하는 주체가 정부기관과 대학, 종합병원 뿐인 지방 도시가 적잖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 기관만으로 한 지방 도시의 고용을 거의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확실히, 듣고 보면 그렇습니다. 행정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대학에서 일하는 교직원이 있고, 학생이 있으며,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있고, 환자가 있고… 그밖에 가족이나 관련 기업의 종업원 그리고 그 가족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규모의 경제 활동이 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행정기관, 대학, 병원을 전국에 균등하게 설치하는 겁니다. 딱 그것만 해도, 인구 일극 집중은 상당히 억제할 수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간의 사정을 미디어는 애초에 전하지를 않습니다.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지방에 고용을 창출할 것인가를 주제로 삼으면, 다들 돈 얘기부터 합니다. 어떻게 생산 거점을 세울 것인가, 어떻게 소비를 진작시킬 것인가, 어떻게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방향으로 빠집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용어만으로 이 문제를 논하는 한, 자원의 지방 분산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인구 분산은 시장 경제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논하려면 얘기가 길어지므로 좀 간략히 말씀드리면, 자본주의는 ‘과소지’와 ‘과밀지’를 인위적으로 창출함으로써 성립한 경제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인구가 국토에 균등하게 흩어지는 사태를 자본주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는 19세기 영국에서 행해진 ‘울타리 치기(enclosure)’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원의 지방 분산은 시장 경제에 그 결정을 위임하면서, ‘시장은 틀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한, 결코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이 주도해 실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교육과 의료에 관해서만큼은 지방 분산을 정치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이에 비해 지난 25년 동안 일본의 정치는 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아니, 교육 정책에 어떠한 철학이나 있는 겁니까?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인구 관련 숫자가 어쩌고 드는 돈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철학입니다.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지침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정치가에게는 바로 그 철학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구 일극 집중 문제’라고 말 안 하고 ‘인구 감소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해왔으니만큼, ‘태풍 문제’나 ‘지진 문제’처럼 사람이 손쓸 수 없는 문제라고 다들 철썩같이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인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자원을 전국토에 분배하고, 에너지나 식량에 관해서도 각자 지역에서 자급자족하게끔 하는 체제를 수립하여, 위기 내성 있는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지 않나요? 자원을 분배해놓는 게 위기에 강하다는 건 상식입니다.

     

     

    그러나 자원의 지방 분산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있었던 것은, 2011년 당시 동일본 대지진 직후 딱 한 순간뿐이었습니다. 당시 ‘수도 이전론(천도 - 옮긴이)이 화제로 올랐었습니다. 수도 기능을 분산하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도쿄에 국가 기능이 집중되어 있으면, 머지않아 수도권 직하형 지진이 일어났을 때 돌연 국가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라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전 사례는 문화청이 교토로 옮겨간 것 단 하나뿐입니다. 이건 그저 단순한 알리바이용입니다.

     

    교토대 명예교수로 있는 가마타 히로키 선생을 종종 만나뵙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난카이 해곡 대지진은 반드시 일어납니다’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난카이 트로프는 주기성이 높은지라 반드시 30년도 안 되어 일어난다고 합니다. 관련하여, 수도권 직하형 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며, 현재는 휴화산인 후지산이 분화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지진학 전문가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경고하고 있는 셈이겠지요? 이러한 재난 리스크를 계산에 넣는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최우선시 할 국가적 과제는 ‘리스크헤지’가 될 것입니다. 통치기구를 분산하고, 산업거점을 분산하며, 교육과 의료의 거점을 분산하여, 중앙집권형이 아닌, 이산형으로 된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것입니다. 이산형 구조로 해 놓으면 설령 어느 한 부분에 큰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금방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살아남은 곳을 거점으로 시스템 전체를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복원력을 고려한다면, ‘리소스를 흩어놓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비책입니다.

     

    수도권이 직하형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기능이 정지될 경우, 구조를 행하러 달려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인구 100만 규모 도시는 니가타입니다. 니가타에서 간에쓰 고속도로를 통해 도쿄까지 오는 것 말고는 대규모 지원의 수단이 없습니다. 간에쓰 고속도로도 당연히 파괴될 것이므로, 교통이 닿지 않게 되겠지요. 이렇게 도쿄에는 구조 물자가 어지간해서는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며칠이 될지, 몇 주가 될지 모르겠지만 식량이나 의료지원도 도착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될 수 있는 한 도쿄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 게 좋다는 사실이 지당해졌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사상자도 적을 것이며, 구조 활동도 효율적으로 가능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열도에서 인구 일극 집중을 용납한다는 것 자체가 위기관리적 측면에서 일을 그르치고 있는 셈입니다.

     

    이대로 인구의 일극 집중이 진행될 시, 앞으로 80년 후 일본 열도에 남아 있는 도시는 2개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신문 기사가 며칠 전에 실렸습니다. 어느 도시가 남냐면 도쿄와 후쿠오카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쿠오카가 남는 이유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라는군요. 도쿄에 가까이 있는 도시는 전부 도쿄가 흡수해 버립니다. 도쿄 이외의 도시는 사라지게 되므로, 지방의 시군구(시정촌 - 역주) 흔적 하나 없이 자취를 감추겠지요. 일본 열도 동쪽과 서쪽에 2개의 도시만 남고, 그 배후로는 황막한 무주지가 펼쳐지게 됩니다.

     

    하지만, 21세기 말까지도 일본의 전체 인구는 5,000만 명 정도 있게 됩니다. 5,000만이라는 숫자를 어림잡아보자면, 지금 한국의 인구가 5,200만입니다. 프랑스는 현재 6,800만 명 되구요. 프랑스인을 앞에 두고서 당신네들 나라의 인구가 줄어드니까 이제 좀만 있으면 파리와 리용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인구소멸지가 되는 것밖에는 살길이 없다고 말하면, ‘얼토당토않는 소리’라며 화를 낼 겁니다. 그럴 리가 없다며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건 ‘정치적 노력이 전무할 경우에는’이라는 조건이 붙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에 전면 민영화해 놓으면, 확실히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도시에 사람이고 자본이고 전부 모여들어, 거기서 집중적인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면, 일본의 자본주의는 그럭저럭 연명할 수 있기에 그러는 겁니다. 제가 ‘싱가포르화 현상’이라고 부르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죠. 도시국가로 만드는 한편 국토를 방기하며 농업도 포기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에 맡겨두면,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러한 난센스와 같은 언설이 당당히 오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되면 도쿄와 후쿠오카밖에는 도시가 안 남고, 나머지는 황야가 될 거라는 말을 들으면, 모두가 ‘아, 그렇게 되겠네요’ 하고 멍하니 수긍합니다. ‘그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정치적 노력 같은 걸로는 경제의 행방을 좌우할 수 없다, 모든 게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 문제다, 라고 모두가 굳게 믿고 있는 셈입니다.

     

     

    ‘교육과 자유’라는 이번 강연 제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의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람은 진리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됩니다. 진리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다가오신다면, 진리 추구란 다름 아닌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 너른 타임스팬(시간 척도 - 역주) 속에서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이릅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광경을 상공에서 부감해 보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어떠한 문맥에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어떠한 문명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공간적으로 구분 역할을 하는 테두리와 역사적인 문맥을 알게 됩니다. 이리하여 지금 자신이 갇혀 있는 ‘억단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유일한 수단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 자신이 정착하고 있는 시점으로부터 일단 떨어져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100200년씩 되는 타임 스팬 가운데, 사물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커밋(commit - 역주)하고 있는 자신을 목도합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도쿄와 후쿠오카밖에 남지 않는다’는 언명이 난센스라는 점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예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인구가 5,000만 명이었던 일본을 따져보면 거기서는 열도 전역에 사람이 살면서, 정치 행동이 행해지고, 경제 활동이 영위되며, 교육 거점이고 의료 거점이고 모두 산재했기 때문이지요. 인구 5,000만 명이어도 국력은 충분했었던 사례가 과거에 엄존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사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델로 삼아 현대 일본의 제도설계를 해보려는 사람이 현재 열도에는 한 명도 없는 겁니다.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대일본제국 시대의 성공 사례로부터 배우자고 들고나오는 정치가가 한 명도 없는 겁니다. 대일본제국 시절 헌법으로 갈아 치우려는 데는 그렇게 열심인 양반들이, 과거의 성공 사례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낌새는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이건 단단히 정신 나간 짓입니다.

     

     

    현재 일본의 농업은 궤멸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식량 자급률이 38%라고는 하지만, 도쿄대 스즈키 노부히로 선생에 따르면 실제로는 이제 10%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일본의 농업종사자는 앞으로 10년 안에 3분의 1 가량 으로 줄어들 예정입니다. 이대로 방치해 두면 일본에서 농업이란 것 자체가 사라집니다. 어째서 일본의 농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정부와 재계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농업이 망하게 된다는 말인 즉, 농경이 행해지던 토지에 머물던 사람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토지를 기반으로 한 생업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갈 곳이 없습니다. 모두가 일자리를 찾으러 도시로 모여듭니다. 일본의 농업이 궤멸하면, 인구의 일극 집중 현상은 더욱 가속화됩니다. 그런 꿍꿍이가 있는 셈입니다.

     

    이거 뭔가 기시감 드는 풍경이지요? 사람들이 농업을 꾸리는 일이 불가능해지고, 생산 수단을 잃은 자영농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는 그 풍경 말이죠. 이것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인클로저 운동’이로군요.

     

    ‘인클로저’란, 이제까지 농지였던 토지를 자본가가 사들여,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치고서는 ‘출입 금지’ 조치를 취했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인클로저’로 인해 그때까지 지방을 근거로 해 왔던 생업의 거점을 잃은 사람들이 도시에 집주하게 되어, 결국 자신의 노동력만을 팔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그들의 노동 가치를 수탈함으로써 영국의 자본주의는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 보면 분명히 그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인클로저’가 행해지기까지, 그 넓은 땅은 촌락 공동체의 공유지(커먼)였습니다. 이곳에는 숲이 있고, 냇물이 있고, 들판이 있었습니다. 촌락 공동체의 구성원은 코먼에서 자유로이 목축을 하고, 수렵을 하고, 낚시하며, 열매나 버섯을 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코먼이 튼실하면 개인적인 자산이 적은 사람이라도 넉넉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짜임새는 유럽에서는 중세로부터 계속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말미암아 촌락 공동체의 코먼이 팔려나갔고, 부유한 귀족과 상인의 사유지가 되었습니다. 공유지를 잃음으로써 수많은 사람이 몰락했습니다. 하지만, 인클로저가 불러일으킨 사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인클로저 운동은 그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거두어간 것만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과소지와 과밀지를 만들어냈다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자본론』에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 분석에 할애된 장이 있습니다. 제목은 많이 딱딱하지만서도, 이 부분이 제가 읽은 곳중에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어떻게 자본주의는 성공했는가? 사실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테이크오프’*를 이룩했을 때 감행했던 건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지방에 균등히 분산되어 있던 인구를 이동시키면서 인구 과밀지와 인구 과소지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것 하나뿐입니다. 실질적으로는 이것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양한 과학 기술적 혁신이 수반되어 산업 혁명이 일어난 면도 있습니다만, 자본주의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입니다. 과소지와 과밀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 말입니다.

    (** 개발도상국이 발전 정체 상태에서 탈피해 자립 성장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 거의 일본어에서만 통하는 개념인 듯함 – 옮긴이)

     

    농업이란 무릇 생산성이 낮은 산업이므로, 좁은 곳에 많은 사람이 집주합니다. 이 토지를 사들이고 난 뒤 그들을 내쫓은 자본가들이 거기서 무엇을 했는고 하면, 농업보다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전환했던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에서 그것은 목양이었습니다. 모직물이 기간 산업이었던 시대였으므로, 전날의 농지를 목양지로 바꾸었습니다. 목양이란 애초에 인력이 굉장히 적게 들어가는, 말하자면 ‘생산성 높은’ 산업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농업에 소요되는 종사자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인력으로 똑같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인건비가 100분의 1이 된 것입니다. 그때까지 농부 100명이 살고 있던 토지에 양치기가 단 한 명 있으면 됩니다. 그것을 조직적으로 행했던 게 바로 ‘인클로저 운동’입니다.

     

    이상이 자본주의의 성공 체험으로서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는 셈입니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면, 인구 과밀지와 인구 과소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라는 것이지요. 인구 과밀지는 땅값이 오르고, 물가가 오릅니다. 갈아 끼울 노동자는 얼마든지 있으니 임금은 낮아지고, 고용 조건은 낮아집니다. 인구 과소지에는 시즌별로 ‘가장 생산성 높은 산업’을 유치합니다. 따라서, 도시에 사람을 모아놓는 한편 지방에는 사람이 안 살게 하면, 자본주의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환영할 만한 사태인 셈입니다. 현재 일본의 정치가나 공무원, 기업가가 자원의 지방 분산을 위해 손 하나 까딱 않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입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이치에 합당하니만큼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은 ‘21세기의 인클로저 운동’입니다. 하락 국면으로 접어든 일본 자본주의를 어떻게든 V자 반등시키고자, 과거의 성공 체험에서 학습한 바, 과소지와 과밀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려 하는 것입니다. 인구와 자원을 싸그리 도쿄에 일극 집중 시키는 것입니다. 나머지 지방은 가능한 한 과소지도 아니고, 무주지로 만들려고 합니다. 무주지로 해놓는 게, 과소지보다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일어난 노토 반도의 지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소지는 다루기가 까다롭습니다. 지역 주민이 이것저것 복구 사업이나 행정 서비스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인구 수를 0으로 해놓는 게 차라리 낫겠다’라고 정부와 지자체 모두,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내심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주민이 하나도 없게 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무주지로 만들어놓기만 하면, 이제 행정 비용은 들지 않는 것입니다. 도로를 닦을 필요도 없고, 상하수도를 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행정기관을 놓을 필요도 없고, 경찰도 필요 없고, 소방도 필요 없고, 학교도 필요 없고, 병원도 필요 없고, 아무튼 다 필요 없게 됩니다. 무주지로 만들어 놓으면 인구도 제로, 관리비용도 제로입니다.

     

    제로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거든요. 원전도 짓고, 태양광 패널도 세우고, 풍력 발전용 풍차도 만들고, 산업 폐기물을 버려도 반대하는 사람 하나가 없습니다. 공기를 더럽히려고 해도, 물을 오염시키려고 해도, 삼림을 벌채하려고 해도, 이제는 더 이상 ‘지역 주민의 반대’란 것 자체가 없습니다. 생태계를 아무리 파괴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당연하지요. 그 지역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까요.

     

    난국에 처한 일본 자본주의의 연명 차원에서 이것은 매우 ‘구미에 당기는’ 이야기일 겁니다. 따라서, 일극 집중이 가속화하는 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단순히 젊은 사람이 도시의 화려함에 끌려 저도 모르게 고향을 떠난다는 그런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일본 자본주의가 그런 사태를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쿄와 후쿠오카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무주지로 놔둔 채 생태계를 맘껏 파괴하겠다는 게, 일본 자본주의의 ‘꿈’입니다.

     

    지금도 이미 일본의 국토는 거주 가능지가 30%입니다. 70%는 무주지입니다. 일본은 산지가 많으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10, 20년 사이에 80%, 90%가 되는 것 한순간입니다. 일본 열도의 대부분은 사람이 살지 않는 토지가 됩니다. 철도와 도로가 다니지 않고, 상하수도가 없으며, 도시가스와 수도도 없습니다. 경찰도 소방도 없고, 학교와 병원도 없습니다.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이제 정부는 더 이상 부담하지 않는 이상, 치산치수란 게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산은 무너지고, 하천은 범람합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이 없는 탓에 딱히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일본의 미래상을 ‘굉장히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일본의 지도층에서조차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위기감조차 품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시장의 요청’에 따를 뿐 그 이외의 것은 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은 부디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제껏 한 얘기들은 현재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나려고 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인기에 접어들게 되면, 젊은 사람 가운데에는 살아 생전 22세기를 맞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80년 뒤 일본 열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을 잘 보아두기 바랍니다.

     

    어지간히 현명한 정치가가 출현한다면, 이 자리에서 제가 묘사한 디스토피아가 결국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히 현명한 정치 지도자가 등장하지 못할 시, 거의 대부분 제가 상상한 대로 될 것입니다. 높은 확률로 그런 디스토피아가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현재 단계에서 ‘절대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앞으로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 주시라는 부탁을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생태계를 지키십시오. 숲과 산, 바다와 강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향토에 고유한 산업을 지킵니다. 전통을 지킵니다. 종교를 지킵니다. 교육과 의료를 지킵니다.

     

    반드시 자급자족해야 하는 것들이 우선 4가지 있습니다. 에너지, 식량, 의료와 교육입니다. 이들은 해외에 아웃소싱해서는 안되는 것들입니다. 외국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의 에너지 자급율은 13.3%입니다. 식량 자급률은 38%구요. 의료는 가까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만, 이 또한 ‘의료비 지출에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보험회사의 압력을 받아 국민개보험제도를 파괴하려 하는 사람들이 정부 곳곳에 있습니다. 아울러, 교육만큼은 오랫동안 자급자족을 해왔습니다만, 이 또한 지금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메이지 사람은 고등교육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로, 일본인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의 정비에 힘써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일본은 모국어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모국어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인 비서구 언어권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분야 차원에서, 최종 학력이 미국 대학원이 아니고서는 일본 안에서 갈 데가 없다든지, 하여간 국내파 졸업장을 도통 써먹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민당 국회의원들 역시, 23대 세습 의원은 그 거개의 최종 학력이 미국 대학이거나 대학원입니다. 미국에 꼭 가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게 있어서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게 아닙니다. 그저 학력란을 ‘때 빼고 광내기 위해’ 유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트층이 국내에서의 그것이 아닌 해외의 최종 학력을 내세우려고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도쿄대보다는 하버드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까, 미국에 가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은, 메이지의 선인들이 필사적으로 갖추려 했던 ‘모국어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연구가 가능한 구조의 정착’이라는 비원을 이해하는 바가 없는 겁니다.

     

    국립대의 독립법인화 이후 국고 운영 교부금이 줄어들면서, 일본 국공립대학의 학술적 영향력은 급전직하하듯 열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정부에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습니다. 엘리트들 자신이 미국 대학, 대학원을 나와서 그 학력을 발판 삼아 커리어패스를 형성했던 ‘성공 체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고등교육기관을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놓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있을 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대학의 수준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자신의 미국 최종 학력이 빛나게끔 손을 써두었기 때문입니다.

     

    혹여 요즘 시대에는 중고등학생 사이에서도, 일본의 대학에 가봤자 소용 없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뭔가 좀 싱거워 보이고, 교원들도 피폐해져서는 뭔가 뚱해 보이며, 대학을 아무리 요모조모 살펴 보아도 전혀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제가 지금 고등학생이고 부모님이 부자라면, 틀림없이 부모님한테 애걸복걸하며 미국 대학에 보내 달라고 했을 것 같아요. 미국이 안 되면, 중국이라든지 한국이라도요. 왠진 몰라도 거기 가면 일본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요.

     

    이 지경까지 고등교육의 아웃소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메이지 시대 선인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기껏 피땀을 흘리며 모국어로 고등교육이 가능한, 모국어로 행하는 연구의 질이 세계 수준을 이룩한 그런 체제를 구축해 놓았건만, 바로 이것을 명색이 일본인이라는 정치가들 스스로 앞장서서 기초부터 무너뜨리려 하는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국력을 저해하는 행위인지, 자해적인 행위인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필리핀은 원래 스페인 식민지였는데, 19세기 말에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말미암아 미국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필리핀은 정치가, 기업가, 대학 교수 할 것 없이 다 영어로 말합니다. 당연히 고등 교육은 영어로 행해지며, 논문은 영어로 쓰입니다. 필리핀에 가보면 다들 영어를 잘 하는 통에, ‘필리핀 사람은 좋겠다. 예전에 미국 식민지였으니까 모두 영어를 잘해서 부러워’ 뭐 이런 소리를 둔감스레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이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극인 겁니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지방어가 있고, 그중에 주요 언어는 타갈로그어입니다. 모국어는 생활 언어로서 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나 경제, 자연과학과 같은 추상성 높은 개념을 말하는 경우에, 모국어로는 그 어휘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말할 수밖에 없어요. 외국어로밖에는 자기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핸디캡입니다.

     

    인간은 지적인 이노베이션을 모국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의 편린이 떠올랐을 때, 그것이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되어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하고 아등바등하는 사이에, 갑자기 어떤 어휘가 떠오릅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전대미문의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그걸 듣는 사람은 ‘아, 맞아. 그런 사고방식이 있었지’ 하고 수긍해 줍니다. 이런 방식의 대화는 모국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겁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은 누차 ‘처음 들었음에도, 뭔가 아련한’ 그런 인상을 가져다 주는 무언가인 셈인데, 이건 모국어를 서로 공유하는 인간들끼리가 아니고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신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네올로지즘이요. 이것은 모국어로밖에는 만들 수 없습니다. 다음은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제가 이제껏 몇 번이나 여러 군데 밝히고 다녔던 사례입니다. 20년 정도 전에 노자와의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있으려니까, 도중에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이 들어와서는, 온천에 몸을 담그는 동시에 ‘야배에~’ 라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런 표현을 처음 들었습니다. ‘야바이’는 원래 범죄자들이 쓰는 은어로 ‘위험하다’는 뜻이었는데, 그게 일상어로 정착되어 마침내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의미로 옮겨갔다는 사실이 지금은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그 말을 썼을 때 옆에서 온천욕하고 있던 제가 한순간만에 그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이지요? 처음 들었던 어휘인데도 말예요. ‘야바이’란 말이 새로운 어의를 획득했단 것을 순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이 신어라는 것이 다름 아닌 모국어로부터 솟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모국어 화자는 예외 없이 모국어 아카이브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모국어 아카이브에는 예로부터 일본 열도에서 발화되고 문자로 쓰여져 온 다양한 어휘, 다양한 표현, 다양한 음운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아카이브가 머금고 있는 어휘, 표현, 음운 가운데 정말 일부분밖에는 지금 쓰고 있지 않습니다. 나라 시대 일본인이 구사한 말의 거의 대부분을 이제 우리들의 일상적인 어휘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아카이브에서 솟아오른 것이기에, 그게 처음 들은 말일지라도 의미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마갸쿠’라는 말도 처음 들었을 때 뉘앙스를 알아챌 수 있었어요. ‘<정반대>보다 조금 강한 느낌’이겠네요. 하지만 ‘真逆’를 ‘마갸쿠’라고 읽는 건 엄연한 불규칙 용례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마사카사마’나 ‘신갸쿠’가 되어야 하는데요. 어쩌면 처음에는 ‘真逆様’라는 문자열을 보고서 국어를 잘 못 하는 학생이 ‘마사카 사마’가 아닌, ‘마갸쿠 사마’라고 읽는 바람에 교실을 뒤집어 놓았다든가 하는 전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주 잘 만든 신어입니다.

     

    처음 듣는 말인데도 뜻을 알아먹을 수 있거든요. 그것이 네올로지즘이 성립할 수 있을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조건은 모국어에 의해서만 클리어될 수 있습니다. 이는 외국어로는 못 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Go went gone 같은 변화형을 외우는 게 귀찮으니까, 앞으로는 go goed goed로 하자고 제안해도 영어권 화자는 수용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실수해서 I goed to the station이라고 말해도 물론 영어 화자는 제가 뭘 말하는지 알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신어’로 받아들여 영어의 새로운 어휘로 등재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저 ‘오류’에 불과합니다. 신어를 만들 권리는 네이티브 스피커에게만 있습니다. 모국어 화자가 아닌 외국인이 아무리 그 외국어를 잘못 활용해도, 그것이 영어 사전에 등록되는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모국어가 링구아 프랑카인 화자들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겁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모국어 아카이브로부터 네올로지즘을 길어올릴 수 있으니까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할 것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처음에는 아이디어의 꽁무니만이 보입니다. 아직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어휘가 없는 상태에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 꽁무니를 필사적으로 포착하여, 그에 걸맞는 네올로지즘을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모국어 화자끼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막 생겨난 아이디어가 전문가 집단 사이에 공유되면서, 비로소 새로운 학술적 패러다임이 성립합니다.

     

    이것이 ‘모국어의 생산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등교육 기관은 꼭 모국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제가 충심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일본의 고등교육기관이 전부 영어를 쓰게 되어 있다면,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의 실마리를 어휘화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은 ‘사전에 실린 말’을 찾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실려 있는 말’의 수는 모국어 아카이브에 축적되어 있는 말의 몇 백만분의 일, 심지어 몇 억분의 일에 불과한걸요. 모국어에서 길어올리면, 이미 몇백 년이나 쓰이지 않았던 말이 거기에 딱 들어맞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그것을 말하라고 하면, ‘현재 사전에 실려 있는 말’ 속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어렸을 무렵부터 영어권에서 자라 순수한 일-영 바이링구얼인 사람이라면 일본어, 영어 모두를 모국어 아카이브로 활용해 일문 고전과 영문 고전을 두루 종횡으로 더러 인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국어로 고등교육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로써 이해하게 되셨을 줄로 압니다. 제국주의 국가는 예외 없이 모든 식민지에서 학교 교육을 반드시 종주국의 언어로 행하도록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식민지에서는 절대로 지적인 이노베이션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식민지 현지어로 고등교육까지 행해지는 시스템을 무심코 허용해버리면 원주민 수재 가운데, 종주국민을 지적으로 능가하는 인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종주국과 식민지라는 권력 관계를 고정시키려거든, 고등교육을 모국어로 못 하게 막는 게 필수 정책인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교육 행정은 몸소 ‘모국어로는 고등교육을 못하는 상태’를 조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학이고 대학원이고 모두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 그게 세계 표준을 따라잡으려면 필요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정론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 후진국의 발상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학에서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합니다’라는 말은 곧, ‘절대로 지적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 다시금 말씀드리는데, 물론 영어를 잘 해놓는 게 좋은 일입니다. 영어권의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해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건, 지적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초등, 중등 수준에서부터 영어교육을 우선시하며 일본어 아카이브에 액세스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지적 이노베이션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자살행위입니다.

     

    중학교에서 고전문학이나 한문을 가르치는 건 딱히 거기 쓰여 있는 것을 외우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 텍스트들은 현대 일본어와 함께 ‘모국어의 아카이브’를 형성하고 있기에, 생각보다 간단히 그것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실감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고전문학은 영어보다도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현대 일본어와 동일한 재료 그리고 밑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 원문 生地: きじ. 한국어 특정 분야에서의 ‘생반죽’이나 ‘원단’과 의미가 같음. 우치다 선생께서는 또한 肉, 피부 감각 또는 신체성을 말씀하심. - 옮긴이)

     

    영어교육을 일본어 교육보다 우선시하겠다는 학교는 대개 ‘1년간 해외 유학 필수 이수 보장’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대학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1년간 해외 유학을 보내 놓으면, 1년 동안은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수업료는 전액을 받아놓고, 그 이문을 본교가 뗀 다음 현지 유학 학교에 남은 액수를 지불합니다. 수업이 없으므로, 교원 인건비는 4분의 1로 줄어듭니다. 학생이 캠퍼스에 없으므로, 기타 경비나 기자재의 상각도 4분의 1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뭔 약은 놈이 등장해 ‘유학 기간을 2년으로 합시다’라고 발제합니다. 머리 참 잘 돌아갑니다. 그러면 인건비는 50% 절감할 수 있고, 교실 수나 캠퍼스 면적도 절반이면 됩니다. 해외에 교육을 전면 아웃소싱하게 되면, 4년간 유학 필수 조건을 내건 학교가 결국 돈을 쓸어담게 됩니다. 대학 자체가 아예 필요 없어집니다. 캠퍼스 부지도 필요 없고, 교직원도 필요 없습니다. ‘해외 유학 필수’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는 대학 사람들은, 그게 최종적으로는 대학 자체가 사라져야 이익이 최대화되는 구조라는 점을 알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논리 자체가 없는 이야기인데도 어째서 다들 눈치를 못 채는지 모르겠군요.

     

    물론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놓고 견문을 넓히도록 하는 건 단적으로 ‘좋은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좋은 일’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활동 기반인 교육 기관이 존립할 이유를 뿌리채 들어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의 아웃소싱은 그러한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습니다. 원래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대학인은 극히 적습니다.

     

     

    ‘주식회사립대학’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몇 개 남아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아마 잘 모를 건데,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시절 각 분야에서 다양한 규제 완화가 시행되었습니다. 그 일환입니다. 그때까지는 학교 법인을 설립하는 데에 골치 아픈 조건이 부과되곤 했습니다. 이러던 것이 ‘특구’라는 걸 만들어서, 거기서는 기업가도 대학을 만들 수 있게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식회사립대학’을 열성적으로 건학했던 사람들의 명분이 이랬습니다. ‘대학 교원들은 샌님들이라서 사업이라는 걸 전혀 모른다. 샌님 학자가 경영하니까 잘 안 굴러가는 것이다. 우리 실무 경험자가 경영하면 최첨단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칠 거니까, 지원자가 쇄도하고, 대학은 왕창 돈벌이할 수 있다’. 확실히, 학자 가운데에는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마케팅 원리도 모르며, 재무제표 읽는 법도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 어디 ‘주식회사립대학’을 만들어 보니까 북새통을 이루기에, 단기간에 사업가들이 앞다투어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예요. 기업가들 눈에 교육 활동은 그 자체로 ‘비용’이니까요. 교원 인건비, 교실이나 학교 건물 등 교육을 위한 공간의 건설과 유지비, 도서를 구입하는 것 모두 비용입니다. 비용 최소화는 비즈니스의 기본이므로, 기업가는 대학을 경영하면서 ‘될 수 있는 한 교육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택했습니다. 교육 활동을 하지 않으면 교원도 필요 없고, 캠퍼스도 필요 없으며, 도서관도 필요 없습니다. 학생들 역시 뭔가 공부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즐기면서 학사 학위를 받길 바랐던 것 같아요. 이렇게 된 이상, ‘교육 활동을 하는 척 하면서, 수업료만 받고, 졸업시키겠다’는 게 대학 입장에서도 학생 입장에서도 ‘윈윈’ 관계겠거니, 그리 머리를 굴린 것이지요.

     

    학생들의 학습 노력은 ‘화폐’이며, 졸업장은 ‘상품’으로 여기고 있는 셈입니다.* 정 그렇다면, 교육활동을 하지 않고서, 아니 하는 척 하면서 졸업시키는 대학에 학생들은 쇄도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도심의 임대빌딩에 캠퍼스를 두고,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하며, 대학에 오지 않고 리포트를 메일로 보내기만 해도 학점을 주고 그랬습니다. 이리하여 교육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격감시켰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는 큰 성공이 맞는데, 물론 그런 학교를 대다수 학생들은 거부했습니다.

    (* 이 당시의 사정에 관해서는, 우치다 선생의 노작 『하류지향』 참조 - 옮긴이)

     

    분명히 수업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고서, 시험이나 리포트는 친구들 것을 전부 베끼는 등, 어떠한 학습 노력도 들이지 않고서 대학을 나올 수 있다는 걸 ‘성공 체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목소리만 클 뿐, 거의 한 줌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학생은 교육을 받고서, 그때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대학을 찾습니다. 그들은 ‘소비자’가 아닌 겁니다. 그 점을 ‘주식회사립대학’ 비즈니스맨들은 근본적으로 착오했습니다.

     

    소비자는 물건을 사는 전후로 인간이 바뀌지 않습니다. 가게 안에서 몇 시간을 있어도, 몇 년을 있어도, 입장하기 전과 입장하고 나서 장바구니 속 상품이 불어나는 일은 있을지언정, 소비자 자신이라는 인간은 1밀리도 바뀌지 않습니다. 쇼핑 카트에 상품을 하나 넣었더니 말투가 바뀐다거나, 표정이 바뀐다거나, 감정 표현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쇼핑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비자란 으레, 거기에 배열되어 있는 모든 상품에 대해, 가게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 가치와 의미를 잘 알고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선반에 있는 상품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없는 겁니다.

     

     

    ‘주식회사립대학’의 실패는 이 점에 있습니다. 그들은 학생을 ‘소비자’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이 ‘인간 그 자체는 전혀 바뀌지 않고, 그저 지식이나 기능, 면허증이나 자격증이 덧붙여진 채로 졸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학에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아무래도 무의식중에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다님으로 해서, 그때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이 될지도 모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런 학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학문 영역’을 전공합니다. 이것은 수퍼에서 장을 보러 오는 소비자 모델이었다면 어림 없는 일입니다. 나올 때에 보니 들어가기 전과 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그런 사태는 물건을 사고 파는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사꾼들은 ‘교육’이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왜 ‘최저의 학습 노력으로 학사 학위를 손에 넣는’ 합리적인 대학에 지원자가 응당 몰려들지를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식회사립대학’의 역사적 실패를 지금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열기가 조금 가신 요즘에 와서는, 또다시 ‘산업계의 요청’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서, ‘실무 경험자를 대학 교원에 채용하시오’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퍼’가 아니라 ‘공장’이라는 이미지로 대학 개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시된 원자재를 준비하여, 정확하게 공정 관리를 하면, 납품기한까지 사양서대로 ‘제품’이 예정 개수만큼 갖춰지는 그런 이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팩토리 모델’로 대학을 재편하려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전보다 훨씬 푸대접을 받습니다. 전까지는 그럭저럭 ‘소비자’라는 ‘인간 생물’이었는데, 지금은 ‘제품’이라는 ‘무생물 물건’으로까지 격하당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애써 그렇게 해도 좋을 게 하나 없습니다. 인간은 통조림이나 자동차와 같이 사양서대로 제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애초에 ‘공정 관리’같은 게 될 리가 없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부터 이런 걸 가르치면 어떤 산출물이 나올지 애초에 예측이 안 되는 걸 가르치고 있는 형국이거든요. 뭔진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잘 소화시켜주는’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 속에서 무언가가 기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움’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배움’이 발동하면 그 다음부터는 자학자습입니다. 저 좋을 대로 하게 두는 거예요. 가르쳐 달라는 것이 있어 찾아오면 가르칩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면 책을 줍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수소문해서 소개합니다. 교사가 하는 일은 이 정도입니다.

     

    학생은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법입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맛이 나아지는 통조림이라든가, 자력으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자동차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교육활동에서 마주하는 대상은 그러한 ‘잘 다듬어지지 않은, 그러나 역동적인’* 인간인 것입니다.

    (* 원문 なまもの – 옮긴이)

     

    그래요. 확실히 대학 교사는 세상 물정을 잘 모릅니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육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다 떠나서 메이지 초엽부터 150년에 걸쳐 만들어낸 교육 제도가 지금 토대부터 무너지려고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강한 위기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아직 어떻게든 건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태반은 지금 교육이 위기적인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본 국민의 태반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요.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강연을 하러 고베에서 한노 시까지 왔습니다. 저도 많이 힘듭니다. 피로가 엄습합니다. 하지만 청중을 상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럼에도 말을 해보자는 각오로 오게 됩니다. 제가 이래봬도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거든요.

     

    위기적 상황이라고는 합니다만, 일본은 자원이 풍족합니다. 아직 12,500만 명이라는 인구도 있구요. 사회지도층이라는 양반들은 어째 다들 상태가 안 좋습니다만, 저변에는 똘똘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복원력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복원력이라는 것을 빨리 발휘시킬 일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붕괴를 막을 길이 지난해집니다.

    (** 원문 裾野: 일본의 영산 후지산의 산기슭을 의미하기도 한다. - 옮긴이)

     

    가장 시급한 게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인데, 지역이 과소화, 심지어 무주지가 되는 그런 사태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친구 중에 소다 가즈히로라는 영화감독이 있어요. 그는 오카야마 현에 있는 우시마도란 곳에 살면서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약 2년 전에 우시마도로 놀러 가서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시마도의 산 위에 따라 올라가보았습니다. 경치가 엄청났습니다. 남쪽, 동쪽, 서쪽에 세토 내해가 펼쳐져 있는, 그야말로 절경이었습니다. 한데 소다 감독이 ‘북쪽을 봐보세요’라고 말하기에 뒤돌아보니, 북쪽에는 무슨 만() 비슷한 모양으로 새까만 것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 뭐지 저게?’라고 물어보니 ‘태양광 패널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거기는 원래 긴카이 만이라는 바닷가였습니다. 수심이 얕은 만이라 어류의 산란지였습니다. 풍어로 이름난 세토 내해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었더랍니다. 그곳을 간척해서, 1970년대에는 간척 사업을 벌인답시고 염전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장사가 안 되어서 염전은 바로 폐업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땅을 못쓰게 되었어요. 흙이 소금기를 머금고 있어서 농사가 안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는 소금 공장과 산업폐기물 폐기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에 태양광 패널이 빽빽하게 세워져서는, ‘일본 최대급 메가솔라’로 자리매김했더랍니다. 만의 형상으로 새까맣게 먹칠이 되어 있었어요.

     

    저는 말입니다, 그렇게 추악한 자연 파괴를 달리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추합니다. 엇비슷한 일들이 앞으로 일본 전국에서 일어날 걸 생각하면 우울해집니다. 지금도 태양광 패널을 여기저기 부설하고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일본의 평지라는 평야, 산이라는 산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는 풍경을요. 해안가에 풍력발전 풍차가 솟아있고, 원전이 있으며, 산업 폐기물 폐기장이 있는 겁니다. ‘도무지 용도가 없는 토지가 있다’는 구실만 있으면, 과소지와 무주지에 그런 광막한 광경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것이 수십 년 뒤에 도래할 디스토피아의 광경입니다. 이것을 실감나게 상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왜 디스토피아를 말해야 하느냐면, 디스토피아의 참상을 세세하게 떠들면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저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보유한 어떤 종류의 지혜일 거라고 봐요. ‘디스토피아물’이 쓰여진 게 20세기 들어서입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가 아마도 시초일 겁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 SF가 대량생산된 건 1950년대, 60년대 미국에서였습니다. 그 무렵 대량생산된 건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망한다는 서사였습니다. 아주 작은 휴먼 에러로 말미암아 핵전쟁이 발발해 문명이 소멸한다는 것이지요. 그땐 그랬습니다. 영화가 되었든, 티브이 드라마가 되었든, 만화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팽대한 숫자의 디스토피엄**이 쓰여졌습니다. 저는 그 시절 SF 애호 중학생이었으므로 SF 소설을 줄창 읽어댔습니다. 그리고 또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든가 『혹성탈출』 같이 세상이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 원문 ディストピアム. 아마도 디스토피아 + triumph 혹은/그리고 ~ium 등의 조어 원리로 우치다 선생이 즉석에서 지어낸 말일 것으로 추측 – 옮긴이)

     

    하지만 그렇게까지 대량으로 ‘핵전쟁에 의해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사이에, 전후 79년 걸쳐 아직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 핵무기 보유국이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란도 갖고 있을 겁니다. 지구를 몇 십번이나 파괴할 수 있을 만큼의 핵무기를 인류는 몇 십년 동안 쭉 보유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핵무기 버튼을 안 누릅니다. 어떤 이유로 저지당한 것이지요. 심리적인 벽이 있어서, 이걸 누르면 인류가 끝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누를 수가 없습니다. 인류가 끝장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어렸을 때부터 핵전쟁으로 인류가 망하는 이야기에 질릴 정도로 세례를 받아왔으니까 그렇지요. 인류의 어리석음으로 세계가 멸망하는 그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라는 것이 너무나 리얼하므로, 아무래도 최후의 순간에는 버튼을 누를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가설이 일리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디스토피아를 거론하는 일에는 의의가 있다는 겁니다. 도래할지도 모르는 디스토피아에 대해 될 수 있는 한 상세하게 거론합니다. 어떠한 휴먼 에러가 세상을 멸망시킬 계기가 되는지, 그런 갖가지 경우에 대해 시뮬레이션해봅니다. 차례차례 ‘페일 세이프’가 파탄하고, 최악의 사태를 향해 파멸 일로를 걷는, 그런 이야기에 정말로 많은 작가들과 각본가들이 끝까지 파고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우이며, 망상입니다. 하지만 망상을 폭주시키는 일이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망상이라도 미세할 정도로 기술한다면, 그러한 망상적인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SF물을 접하며 배운 게 그겁니다.

     

    세상의 종말을 다룬 디스토피아 서사가 현실 차원의 디스토피아 도래를 막기 위해서는 조건을 요합니다. 바로 대량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한된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끊임없이 순환된다 하더라도 그건 헛일입니다. 엔터테인먼트로서, 전 세계 사람이 디스토피아 서사를 ‘향유’할 수 없다면, 디스토피아 서사가 현실에서의 디스토피아 도래를 막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서서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이 집에 가서 이렇게 떠들어 주세요. ‘오늘 우치다라는 놈이 강연을 와서 이상한 얘기를 하더라고. 이대로 가다가는 도쿄 일극에 인구가 집중되어, 나머지 땅들은 무주지가 된다고 말했어. 진짜 이상한 얘기야 그치. 그럼 사람이 안 사니까 거기에 태양광 패널이나 풍차, 원전만 놓이는 거고, 그 주위를 원숭이와 멧돼지 곰이 어슬렁거린다는, 간선도로에서 한 발짝이라도 떨어지면 야생동물에게 습격당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지껄이더라고.’ 하는 식으로 얘기해 주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런 디스토피아 광경을 상상케 하는 ‘이상한 이야기’를 부디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얘기하고, 학교에서 얘기하고, 직장에서 얘기하고…. 그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열도에 닥칠 최악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면 참 좋겠다, 해서 제가 지금 떠들고 있는 겁니다. 이건 아까 전 ‘핵전쟁으로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로 노리는 효과와 엇비슷한 겁니다. 인류는 79년 동안 그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아직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본 열도가 황량한 무주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한, 그런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아무도 그러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면, 그런 미래가 성큼 도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겁니다. 상상력이 현실을 변성시킬 수 있는 그 힘을 얕봐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 아냐?’ 하고 상상했던 내용을 말했을 뿐인데, 마침 그 마음 속 흉계가 딱 들킨 상대방은 아무래도 좀 흠칫하게 됩니다. 과소지를 무주지로 만들어놓고서, 거기다가 태양광 패널이나 풍차, 원전, 산업폐기물 처리장을 만들 작정 아니었냐고 알아맞히면, 마지못해 급거 ‘그런 짓거리들’을 하기가 꺼려지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무슨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머릿 속 알맹이가 적중’당하는 순간 인간은 얼어버리는 겁니다. 좀 창피한 게 인지상정이거든요. 자기 머릿속에 들어있는 게 그리도 바깥으로 숭숭 빠져나가기 쉬운 건가? 하고 느끼면 창피해지니까요. 그래서 아니라고 잡아뗍니다. ‘그런 마음 먹은 적 없어’ 하고 시치미를 뗍니다. 그 정도만 되도 충분합니다. ‘당신, 원래 뭐뭐 하려고 했지?’ 라고 추궁받으면 ‘그러려고 한 적 없어’라고 기필코 반사적으로 대꾸합니다. 인간이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멈춰세울 수는 있습니다. 물론 아주 잠시 동안만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 다음에 생각할 법한 것 역시 선수를 쳐서 ‘담에는 이런거 하려던 참이었잖아’ 하고 알아맞히면, 이때도 잠시는 멈춰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못된 꾀를 줄지어 짜내는 그 사이동안, 최악의 사태가 도래하는 것을 일순간이라도 미룰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하는 게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스토리를 공유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하고. 여러분도 아무쪼록 디스토피아를 세세한 데까지 적어보면서 한 명 한 명 저마다의 디스토피아 서사를 만들어보시길 바라요.

     

     

    시마다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최근에 『빵과 서커스』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문고판 해설을 썼습니다. 이 책은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 되어 한없이 수탈당하면서 가엾고 가난하며 비천한 나라가 되어가는 프로세스가 실로 생생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이 작가는 그렇게까지 몰입하면서 썼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이 망가지는 과정을 선연히 묘사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마다 마사히코가 일본에 품고 있는 애정을 느낀 겁니다. 일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일본이 그런 식으로 되지 않기를 바랐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써진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묘하게 다 아는 체하며 그럴싸한 말을 할 게 아니라, ‘그건 단순한 망상이야’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그러한 미래만큼은 절대로 불러들이고 싶지 않은 ‘실현 안 되었으면 하는 미래’에 대해, 아주 이 잡듯 샅샅이 기술하는 일일 겁니다. 이런 일본만큼은 아니길 바라는 디스토피아 일본의 광경을 쨍쨍히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미래를 실현시키지 않는 데에 반드시 효과가 있습니다.

     

    , 벌써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교육과 자유’ 이야기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래도 결론을 서두에 미리 말해 두어서 망정이지 다행입니다. 지성의 자유란, 긴 ‘타임스팬’ 속에서, 너른 ‘랜드스케이프’ 속에서 세상을 본다는 걸 의미합니다. 긴 역사적 ‘컨텍스트’ 속에서 현실을 본다는 걸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가 ‘컨텍스트(맥락)’라고 말할 때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보통 쓰는 용례와는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역사학에서 말하는 ‘컨텍스트’란 과거를 다룰 때 쓰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고, 그 귀결로 무엇이 일어났다, 하는 그런 인과관계가 석명됩니다. 역사학이 원래 그런 겁니다. 역사학은 당연한 얘깁니다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미래를 다루지 않기로 한 것은 학술적 엄밀성을 기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지당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 예언은 대개 빗나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빗나가길 바라’기 때문에 미래를 다루는 소이인걸요. 이런 미래만큼은 실현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제 예측만큼은 절대로 빗나가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이리 된다’고 제가 단정을 하는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불러주는 대로 가가지곤, ‘일본은 이렇게 망한다’ 말하고 다니는 겁니다. 전혀 호응을 못 받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숨 걸다시피 하는 거예요. 저는 ‘지옥의 전도사’입니다.

     

    저는 『포린 어페어즈』라는 미국 외교 전문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학자들이 글을 쓰는 걸 보고 가장 감명 깊은 점인데, 그들은 진심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해 상상하기를 기꺼워하더군요. 아마도 그렇게 핵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던 성공 체험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번달은 특집으로 ‘미-중 전쟁’을 다뤘습니다. -중 전쟁이 어떤 계기로 일어나서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 역내 동맹국들은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가? 그런 악몽적인 미래가 매우 자세히 쓰여져 있더랍니다. 때마침 방금 전 읽었던 논문 가운데 깜짝 놀랐던 꼭지가 있었어요.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논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이렇게라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요지였어요. 중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할 시 중국은 이때다 싶어 막 나갈 거고, 결국 동아시아에서의 팽창 정책에 아무도 제동을 못 걸 겁니다. 따라서 대중 강경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논리였어요. 그리고 여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을 승인하는 것이라네요. 이 두 나라가 핵무장할 경우,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성은 위태해집니다. 자그만 오인이나 오해를 계기로 핵전쟁이 일어날 리스크가 급거 높아지는 것이지요.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시겠다면 핵카드를 쓸 수밖에’라고 협박하면, 중국을 군비 축소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일 성과마저 얻을지 모릅니다. 그런 논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뭐 이런 걸 다 써 놓았냐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정치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사람이 존중받는단 점을 톡톡히 알 수 있겠더라고요. 이 논문을 쓴 정치학자는 미국 내부의 정책 결정자들을 상대로 제언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읽기를 기대하며 쓴 것입니다. 『포린 어페어즈』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필독 문헌이라고 해요. 미국은 경우에 따라서 중국 턱밑에 명시적으로 핵을 배치할 거고, 동아시아 권역에서의 한정적인 핵전쟁도 불사하고 있다, 그런 의지를 중국에게 보여주는 게 협상에 유리하다고 여기어 ‘블러프’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미국식 정치적 책략의 효과를 노린 논문이다 싶었습니다. 근데 읽으면서 기가 찼던 대목은,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공격을 받은 탓에 핵무기에 엄청난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자민당 정치가들 덕분에 범국민적 핵 알레르기가 희박해졌으므로, 핵 가질래? 하고 살살 구슬리면 일본인은 쾌히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쓰여진 곳이었습니다. 미국은 일본 사람들 정치의식이 낮다는 점을 멸시하고 있는 게 행간에서 배어 나올 정도였어요.

     

    그렇습니다만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한정적인 핵전쟁을 일으킨단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분방한 상상력에 저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코 왕도의 정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분방한 상상력에는 기꺼이 실크 해트를 벗어 예를 표하렵니다. 생각의 극한에 이르러 비로소 ‘그럼 어떻게 동아시아에서의 핵전쟁을 예방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마련이니까요. -중 전쟁을 회피할 시나리오를 알차게 집필하기 위해서는, 최악의 형태로 미-중 전쟁이 일어나는 게 과연 어떤 경우인가? 하는 그런 상상력을 회전시킬 필요가 있는 겁니다. 저도 이에 못지 않게 씨름했습니다. 어떻게 미-중 전쟁을 회피할 수 있을까? 일미 안보 조약을 폐기하는 게 적이 효과적이지 않겠느냐, 뭐 그런 겁니다. 안보조약은 체결 당사국 가운데 한 쪽이 일방적으로 통고만 하면 1년 후에 자동 소멸하게 되어 있는 조약입니다. 일미 안보 조약을 폐기하고 난 뒤, 중국과 일중 불가침 조약을 맺는 수법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거예요.

     

    자고이래로 야마타이국 운운하던 시절부터, 일본 열도는 중화 제국의 오랑캐(원문 辺境* - 옮긴이)로 여겨진 바 위나라가 ‘와왕’, 한나라가 ‘나왕’이라는 관위를 하사하였으며, 아시카가 쇼군을 ‘일본국 국왕’, 도쿠가와 쇼군을 ‘일본국 타이쿤’으로 봉하였으니까요. 변방 자치령의 대리인 노릇을 150년 전까지 해오던 셈입니다. 지금도 사실상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은 미국령 총독이므로, 자치령으로서 고도의 자치권을 윤허받은 ‘일국양제’라는 점에서는 미국의 속국이든 중국의 속국이든 오십보백보이지 않느냐 하고 오기를 부리는 것도 과히 어색하지만은 않습니다.

    (* 우치다 선생의 노작 『일본변경론』 참조 – 역주)

     

    이렇게 된 이상 위와 같이 제안하면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에 대한 상상력을 구사해 보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과연 일본의 미래에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에 대해서요.

     

    하지만 일본의 정치학자들은 말입니다. 일본에 도래할 가능성이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미래에 대해서도 전혀 상상력을 부리지 않습니다. 한다는 말이 고작 ‘굳건한 일미동맹’입니다. 물론 이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입장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자 그럼 일미동맹을 대신해 어떠한 ‘얼터너티브’가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중국과 동맹하겠다는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기존 자유진영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래에 대해 아무도 아무것도 논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일미동맹 중추’ 일변도입니다. 하지만 아까 그 미국 양반은 ‘역내 주변국을 포탄으로 삼아 중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그런 비정한 구상을 공공연히 떠드는 것 아니겠어요. 주객이 전도된 꼴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현재, 일본 사회 전체가 집단으로 병에 걸렸다 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의 고갈이라는 병이 든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자리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분방한 상상력을 구사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어디까지 적어낼 수 있을까, 그런 작업을 통해 상상력을 가늠해 보셨으면 해요. 최악의 사태에 관한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여러분 내부에 고도로 정갈한 지적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하고, 국제 정치를 알아야 하며, 다양한 나라의 국민이 저마다 사로잡혀 있는 지정학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도 또한 지식이 없으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서술할 수 없는 법이거든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엔터테인먼트로서 써낼 수 있을 만큼의 지식과 독해력, 그것을 익혀 두기를 바랍니다. 사고의 자유, 상상력의 자유, 제가 고등학생 여러분께 가장 당부드리고 싶은 것들입니다. 조금 시간이 초과되기는 했습니다만 어찌어찌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지점에 착지한 것 같군요. 끝까지 집중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97)

     

    (2024-10-11 12:2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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