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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저의 차이가 배움의 격차로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0. 25. 15:55

    여러분은 이번 자민당 대표 경선 후보로 나선 9명 가운데 무려 6명의 최종 학력이 ‘미국 대학 또는 대학원 졸’이었다는 점을 눈치채셨을까요? 일본 정치 엘리트의 현실이란 바로 ‘최종 학력- 미국’이 최소 지원 요건으로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경향이 단적으로 ‘몹쓸 일’이라고 봅니다.

     

    ‘어느 나라 대학에 가든 본인의 자유다. 글로벌 시대니까. 해외에 나가 배울 정도로 의욕적인 젊은이를 왜 괜히 타박하느냐?’ 하고 반론하는 사람이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치 세계뿐만이 아닙니다. 재벌가나 교수 자제들도 중학교 때부터 국제학교에 다니거나, 해외로 유학 가는 게 요즘 트렌드입니다. 그렇게 해야 영어권 대학에 진학하는 데 유리하거든요.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하버드의 연간 수업료는 56,550달러인데, 지금 환율로 800만 엔을 뛰어넘습니다. 기숙사나 생활비를 합하면 연간 1,000만 엔 가까이 되는데, 이렇게 아이 혼자 보내놓고 뒷바라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가정형편이 되어야지만 아이비리그에 유학 갈 수 있는 셈입니다.

     

    아무리 ‘외국에서 배울 의욕’이 있다손 치더라도 집안이 가난하면, 예외적인 천재가 아니고서는 그런 타이틀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나는 이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부모 세대의 경제력 차이가 자녀 교육의 차별로 이어지면서, 대를 이어 경제적 양극화를 재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국민국가라면 모름지기 집안이 가난해도 아이들이 바라는 한 가장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해주도록 지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무상이어야만 하며, 국내에서 모국어로 세계 수준의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 고등교육의 자비 부담 비율은 67%입니다. OECD 평균 31%에 비추어 볼 때, 일본 정부는 ‘집이 가난한데 정 고등교육을 받고 싶거들랑, 그만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시오(못 하겠으면 관두시고)’라는 식의 교육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약관화합니다.

     

    일본육영회의 장학금 제도가 사라진 지 어언 20년 되었습니다. 그때 거론된 이유가 ‘공적 지원금을 퍼주면 금융기관의 학자금대출 잔고가 줄어드니까 이건 곧 정부실패이자 영업권 침해다’였습니다. 은행에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장학금 제도를 폐지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 졸업 후에 교직이나 연구직 등에 적용되는 소위 ‘면제 직종’ 코스가 있어서, 상환 의무를 제하여 준 적도 있습니다(교사 지원자가 하도 줄어들다 보니, 교원 관련해서는 최근에 면제직이 부활했기는 했습니다).

     

    집안 형편과는 상관없이 노력만 하면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하는 그런 제도를 정비해내는 게, 과거 메이지 정부의 숙원이었습니다. 다 떠나서, 모국어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선인들의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모국어로는 제대로 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없는 나머지, 출세를 희망하는 자제들이 선진국에 유학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나라야말로 곧 ‘후진국’이며 ‘식민지’라는 방증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은 모국어로 대학원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모국어로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딸 수 있게 되어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이건 선인들이 후속 세대에게 선사한 ‘선물’과도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최종 학력이 미국이어야만 엘리트의 조건에 달한다는 건, 바로 ‘식민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영미권 대학에서 영어로 수업을 받고 영어로 논문을 써서 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제도를 만들어놓고서는 ‘글로벌화를 달성해 냈다’며 실실대는 사람을 만약 마주치게 된다면, 메이지 사람으로서는 피눈물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형설시대』 925)

     

    (2024-10-11 10:3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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