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한국 민주주의의 잠재력
깊이 잠들었다 아침에 깨보니 '한국에서 계엄령이 발령되었다가 몇 시간 만에 해제' 소식을 접하며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어 트위터에서 입수할 수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국의 국회의원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눈앞에서 정치적인 격변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곧바로 이해하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할 일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도에는 '기(機)를 보다'라는 말이 있다. 이 기(機)라는 것을 소홀히 했다가는 역사가 다른 차원의 궤적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계엄령 해제가 한나절만 늦었어도 시민과 군인 사이에 유혈 참사가 일어났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과거 44년에 걸쳐 쌓아 올린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때는, 전두환이 선포한 계엄령에 항의하는 학생 및 시민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충돌하여, 다수의 시민이 사살당했다. 희생자 수는 군인 측이 144명이라고 하는데, 그 몇 배나 되는 시민이 죽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44년 뒤에, 또다시 계엄령하에 시민과 군인이 대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채 계엄령은 해제되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확고한 결의와 함께, 군인들의 항명에 가까울 정도의 절도가 있었기에 이번 계엄령의 합법적인 해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건설하고자 했던 노력에 대한 빛나는 '열매'이다.
분명히 한국의 정치판은 결코 완벽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국회와 대립하는 가운데 종종 임기 한복판에 '레임덕 현상'이 오며, 또한 유권자들 역시 통치 능력이 결여된 인물을 누차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전임 대통령이 죄수복 차림으로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갇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결함이 많은 제도를 필사적으로 운용해 온 한국 시민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반면(이 반면이라는 말만큼은 결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의 둔감한 대응에 일본인인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한밤중에 벌어진 일이라지만 지상파 TV의 경우 NHK가 10분 정도 뉴스를 내보냈을 뿐, 옆 나라의 정치적 위기에 대한 후속 보도조차 없었다. '눈앞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즉각 알아차리고,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할 일을 다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바깥 나라에 있으니 무엇을 하든, 그 행위가 군홧발에 의해 저지당하거나, 혹은 체포•구금될 위험성 등이 전무한 환경에서, 일본 국내 지상파 TV는 그저 두 발이 얼어붙은 채 예정된 방송을 내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무능하고 줏대 없는 미디어가 만에 하나 일본의 민주주의가 요동칠 때 적절한 보도를 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무리라고 본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두건대, 일본 지상파 TV는 이제 '보도 기능'을 참칭할 자격이 없다. 내부자들도 이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미디어 내부에 다시금 '보도' 기관으로 환골탈태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2024-12-06 12:0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