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허무의 정치 역학

오길비 2024. 10. 24. 15:29

자민당 총재선거 와중에 현행 ‘건강보험증’과 ‘신 마이넘버 보험증’에 관한 질문을 받고서는, “두 제도의 병용 역시 선택지로 합당하다”고 답변했던 이시바 시게루 씨였다. 하지만 총리로서 정권이 출범함과 동시에, 기존 건강보험증을 오는 122일부로 폐지하고, 이를 마이넘버 카드로 전면 교체할 예정이었던 이전 정부 방침을 “견지”하겠다고 밝히며, 후보 출마 당시 내걸었던 아젠다를 뒤엎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식언(말 바꾸기)을 힐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언동을 잘 살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사리에 맞는 구석이 없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말하자면 ‘가족회의’이므로, 총재 후보로 나서는 자리에서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아젠다’를 따로 내걸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다. 자 그러면 어째서 국민으로 하여금 한순간 동안 기대하게 해놓고서, 다시 실망시키는 이런 ‘쓸데없는 짓’을 했는가?

 

건강보험증 폐지 안건과 관련해서는, 의료 현장과 이용자 모두 이에 반대하고 있다. 조기 도입을 요청하는 측은 관가와 대기업뿐이므로, 이를 애써 쟁점화하면 총선에서 표를 잃는 일은 있을지언정 얻는 일은 없다. 경사스럽게도 자민당 지지율이 높은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총선임을 자각할 머리가 돌아간다면, ‘건강보험증 폐지 연기’로 가는 방침이 득표수를 늘린다는 점은 알 것이다. 구태여 국민의 심기를 거스를 이유가 없다.

 

이는 결국 아베 정권 이래 3대에 걸친 ‘성공 체험’을 근거로 한 정치적 판단일 것이라고 필자는 결론 내렸다.

 

아베-스가-기시다 세 총리가 드러낸 정치의 특징은, ‘국민의 요망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 대다수가 무력감에 휩싸이고, 정치 참여에 대한 의욕을 잃으며 선거에서 기권하니, 결과적으로 강고한 특정 소수 몰표 집단을 보유하기만 하면 선거에서 연전연승한다는 ‘필승의 패턴’을 자민당은 기어이 발견해 냈다. 민의를 수긍해 주면, 유권자들이 기고만장한다. 그러는 것보다 ‘너희들은 무력하다’고 톡톡히 손봐주어야 정권이 안정된다.

 

현행 건강보험증 적용 연장은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것을 짓밟음으로써 자민당은 유권자의 ‘기대’를 잃겠으나, 대신 유권자에게 ‘무력감’만은 안겨줄 수 있다. 아마도 후자대로 하는 게 정권 연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필자가 아는 한, 정치판이 이렇게까지 허무적인 분위기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24-10-08 10:4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