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최악의 사태에 대해 상상력을 행사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오길비 2024. 10. 23. 14:50

디스토피아를 서사화하는 이유는, 디스토피아의 실상을 아주 자세히 꾸며내면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저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류 차원의 지혜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장르’가 처음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 초엽부터입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든가 조지 오웰의 『1984』를 그 효시로 꼽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SF물이 대량 생산된 단초는 1950년대, 60년대 미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시절 대종을 이루었던 것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소한 휴먼 에러로 촉발된 핵전쟁이 터지고, 문명이 소멸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영화, 티브이 드라마, 만화, 소설을 막론하고 팽대한 수의 디스토피엄*이 쓰였습니다.

(* 원문 ディストピアム. 아마도 디스토피아+모라토리엄의 조어 원리로 우치다 선생이 지어낸 것으로 추측 – 옮긴이)

 

저는 소년 SF광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디스토피아 문학의 황금기에 대량의 SF를 접했던 것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핵전략 사령부』(영제 Fail Safe - 옮긴이), 『혹성탈출』 등 세상이 핵전쟁으로 망하는 영화가 당시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소설이나 티브이 드라마 역시 물릴 정도로 온통 비슷한 이야기가 유포되곤 했습니다.

 

어째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허다한 ‘핵전쟁으로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져서 유통되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핵전쟁으로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희망이 불러일으킨 소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 그렇듯, 세계대전 이후 79년에 걸쳐 아직 한 번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 핵무기 보유국이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의 나라가 핵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를 몇십 번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핵무기를 인류는 수십 년 동안 보유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핵무기 버튼을 누른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정적 행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지요. 심리적인 벽 같은 게 있어서, ‘이걸 누를 시 인류 종말 행’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단추를 누를 수가 없습니다. 누를 시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어린 시절부터 핵전쟁으로 인류가 망하는 이야기에 물릴 정도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일 거예요. 인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세상이 망한다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너무나 실감 났기에, 역시 최종적으로 버튼을 누르는 데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스토피아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도래할지도 모르는 디스토피아에 대해 최대한 상세히 말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휴먼 에러가 세상을 파괴하는 계기가 되는지, 그것을 아주 있는 경우 없는 경우 모조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입니다. 차례차례 ‘페일 세이프(안전장치)’가 파탄하여, 최악의 사태를 향해, 파멸 일로를 걷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수많은 작가와 각본가가 이에 대해 철저히 파헤쳤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우이며 망상입니다. 하지만, 망상을 폭주시키는 게 때로는 필요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망상이라도 미세한 면까지 기술될 수 있다면 그러한 망상적인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SF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세상의 종말을 다루는 디스토피아 서사가 디스토피아의 도래 자체를 방지할 수 있으려면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 되어야 하는 것이죠.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애써 전승된다 해도 꽝입니다. 엔터테인먼트로, 전 세계 사람들이, 디스토피아 이야기를 ‘향수하는(받아 누리는) 게 아니라면, 디스토피아 이야기의 존재가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막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서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서 떠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오늘 우치다 다쓰루라는 양반이 강연을 와서 이상한 얘기를 했지 뭐야. 이대로 가다간 도쿄로 인구가 일극 집중되고, 그담에는 지방 각지에 사람이 안 살게 된다고 했어. 무슨 뚱딴지람. 그렇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는 태양광 패널이나 풍차, 원전만 놓여있는 거고, 그 주변을 원숭이나 멧돼지, 곰이 돌아다니며, 간선도로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도 야생동물에게 습격당한다고 하는데…. 그런 요상한 망상 이야기를 했어’라고 퍼뜨려 주기를 바랍니다. 집에서 얘기하고, 학교에서 얘기하고, 직장에서 얘기하고요. 그러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일본 열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건 ‘핵전쟁으로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인류는 79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아직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함께 일본 열도가 쑥대밭이 되어 무거주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한, 그런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아무도 그런 미래를 상상하지 않을 시 그런 미래가 속히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겁니다.

 

상상력이 가진 현실변성력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라는 상상을 상대방에게 던졌을 때, 급소를 맞은 인간은 약간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네들, 인구 과소지를 무주지로 만들어서, 거기에다 태양광 패널이라든가 풍차, 원전, 산업폐기물 처리장 같은 걸 만들려는 거 아니야?’라고 정곡을 찌르면, 할 수 없이 그날부로 ‘그런 일’은 하기 버거워집니다. 딱히 죄의식을 갖게 되는 건 아닙니다. ‘머릿속 생각을 누가 알아맞히는 일’이 일어나면 인간은 멈춰 서게 됩니다. 몹시 기분을 상하게 되거든요. 자기 머릿속이, 그렇게 바깥으로 ‘숭숭’ 빠져나가는 게 간단하단 걸 느끼면, 어지간히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잡아뗍니다. ‘그런 생각 한 적 없다’면서요. 이렇게 잠정적인 성과는 거둘 수 있습니다. ‘당신, 앞으로 이렇게 하려고 했지?’라고 적중당하면, ‘그런 생각 한 적 없어’라고 반드시 반사적으로 대답합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나마 멈춰 세울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잠시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생각할 법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선수를 쳐서 ‘그런 다음에는 이러려고 했잖아’라고 알아맞힐 수 있으면, 역시 그때도 잠시만큼은 몸이 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다음 간계(원문 悪知恵; 교지 - 옮긴이)를 틀어막는 동안까지는, 최악의 사태가 도래하는 것을 딱 한순간만큼은 늦출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스토리를 공유하고 싶어요, 여러분. 여러분도 모쪼록 디스토피아의 상세한 모습을 낱낱이 적어나가면서, 각자 저마다의 디스토피아 서사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시마다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제 친구인데, 최근에 『빵과 서커스』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요전번에 제가 문고판 해설을 써줬습니다. 이 책 역시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일본이 점점 형편없는 나라가 되어가는 와중에, 참다못해 미국 종속 상태로부터의 자립을 내건 테러리스트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참으로 통쾌한 소설입니다.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 되어놓아, 매일 매일 수탈당하여, 보기 딱할 정도로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가 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생생한 필치로 묘사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작가가 정말 변태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이 망가지는 과정이 아주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마다 소설가가 품은 사랑의 발로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일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일본이 제발 이렇게는 되진 말아 달라는 마음을 먹으니 술술 써지게 된 겁니다. 그런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묘하게 잘난 척하며 다 아는 것처럼 구는 게 아니라, ‘정신 차려 그건 망상이야’라는 말을 듣더라도, 이런 미래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할 ‘실현되지 않길 바라는 미래’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꿰뚫어 서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본만큼은 아니길 바라는 디스토피아 일본’의 광경을 선연하게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그런 미래를 실현하지 않는 데 효과적일 따름입니다.

 

저는 ‘빗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제 나름의 미래를 말하고 다닐 뿐입니다. 이러이러한 미래만큼은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제 예측은 반드시 틀리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이렇게 된다’고 단정하는 겁니다. 이래 봬도 꽤 진지하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저는 『포린 어페어즈』라는 미국 외교 전문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미국 정치학자들에게 가장 탄복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정말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아끼지 않더군요. 그런 방식으로 핵전쟁을 저지했던 적이 있었던 성공 체험 때문이겠죠.

 

이번 달 특집은 ‘미・중 전쟁’이었습니다. 미・중 전쟁이 어떤 계기로 일어나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다뤘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악몽같은 미래도 상세히 쓰여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이건 진짜 대단하다 싶었던 대목이 있었는데,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을 종용하는 논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중국 상대로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한, 중국은 완전히 기어올라 그들의 동아시아 팽창정책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따라서 중국에 강경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책으로,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을 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핵으로 무장하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성이 깨지게 됩니다. 사소한 오인이나 오해를 계기로 핵전쟁이 개시될 위험성이 급거 높아집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꾸 그렇게 재미없게 굴면, 일본과 한국을 핵무장 시킬 거’라고 윽박질러놓고서, 물밑으로 미국과의 군축 협상 회담 테이블에 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논문이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진짜 좀 심하다 싶기는 하면서도, 미국인이 이러한 유형의 정치적 상상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룬다는 점만큼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논문을 쓴 정치학자는 꼭 미국 정책결정자들 보고 읽으라고 그런 제언을 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읽기를 기대하며 썼습니다. 『포린 어페어즈』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필독 문헌이니까요. 미국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이 두 나라의 단독 핵무장, 그리고 동아시아 권역에서의 한정적인 핵전쟁도 불사하고 있음을 중국에 각인시켜 두면 나중의 협상에 유리하다고 여기기에 그런 식으로 쓰는 겁니다. ‘더욱 나은 미래’를 조형하기 위해 ‘최악의 미래’를 꺼내 드는 겁니다.

 

그러한 정치적 책략으로 써먹을 효과를 노린 만만찮은 논문이기도 하거니와, 더 기가 찼던 건 다음 대목이었습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인 탓에 핵무기에 격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이래의 자민당 정치가들 덕분에 범국민적 핵 알레르기 반응이 희박해져 있다. 따라서 핵무장 할 의향이 있는지 살짝 의중만 떠보면, 일본인은 옳다구나 따를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참 이거 보니까 미국은 어지간히 일본을 경멸하고 있구나 하는 점이 행간에서 삐져나올 정도로 느껴지더군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그 밖의 나라 사이의 한정적인 핵전쟁을 수행한다는 상황 자체를 상상할 수 있는, 미국인이 가진 분방한 상상력에 저는 경의를 표합니다. 정치적 지성까지는 안 가더라도, 이런 분방한 상상력에는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까지 생각의 단초를 마련해야지만, 이제 어떻게 동아시아에서의 핵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화제로 옮겨갈 수 있기 마련입니다.

 

미・중전쟁을 회피할 시나리오를 야무지게 써내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 최악의 모습으로 미・중전쟁이 개시될 만한지에 대한 상상력을 가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지금, 일본은 사회 전체가 집단으로 병을 앓고 있는 셈입니다. 상상력의 고갈이라는 병이요.

 

젊은 여러분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구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어디까지 써 내려갈 것인지, 그런 면에서 여러분의 상상력을 스스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악의 사태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이해하고 있고, 국제 정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세계 각국 국민이 사로잡혀 있는 지정학적인 ‘스토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엔터테인먼트물로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해독력을, 제 몫으로 소화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고의 자유, 상상력의 자유. 제가 고등학생 여러분께 가장 바라는 것들입니다. (99, 지유노모리 가쿠엔 건학 40주년 기념 강의 일부)

 

(2024-09-29 12:1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