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벌귀족의 탄생
자민당 총재 선거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를 살펴보면, 온통 후보자들의 정책이나 당내 기반에 대해서만 논평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다. 9명의 후보자 가운데 6명의 최종 학력이 미국 소재 대학 또는 대학원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3명 가운데 한 명도, 일본에 있는 대학을 나온 뒤 미국 하원의원의 보좌관을 했다는 점이 이후의 커리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매우 강조했다.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자민당에 한해서는 최종 학력이 미국일 것이 커리어 형성에 필수 조건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바로도, 일본의 부유층 가운데에는 중등 교육부터 자녀를 해외 혹은 국제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상례’가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게 영어권 대학에 진학하는 데 이점이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글로벌화 시대이니만큼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건 개인의 자유다. 옆에서 가타부타 말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경향은 단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하버드 대학의 학비는 연간 56,550달러다. 일본 엔으로는 800만 엔. 생활비를 포함해 연간 1,000만 엔 이상을 지출할 여력이 있는 가정의 자녀밖에는 아이비리그에 유학할 수 없다. 이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사례는, 일본 국민 가운데서도 수 퍼센트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 학교 교육의 GDP 대비 공적 지출 비율은 오래 전부터 선진국 최저 수준이다. 고등교육기관의 자비 부담률은 일본이 67%. OECD 평균은 39%다. 명백히 일본의 정부는 ‘고등교육은 수익자부담(돈이 많은 사람은 좋은 교육을, 없는 사람은 없는 형편대로)’이라는 방침하에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해외의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사람들이 그대로 해외에서 생활한다면 ‘글로벌화’라고 불러도 된다. 그러나, 자민당 총재 후보자들의 커리어가 드러내는 바와 같이, 그들이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것은, 그 학력이 일본에 복귀하고 나서 지배층으로 도약하기 위한 첩경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식민지 사람’이나 할 법한 행동거지다.
메이지 유신 이래 선인들은 일본인이 일본어로 고등교육을 이행할 구제(舊制) 고교와 대학을 단기간에 설립해 냈다. 이는 참으로 훌륭한 업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들은 ‘무릇 교육이란 해외에 외주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점, 고등교육을 자국어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 처지를 면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역시 모국어로 대학원 교육이 행해지고, 모어로 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나라는 결코 많지 않다. 일본에는 불과 1억 2,500만 명의 모국어 화자밖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것이 가능한 예외적인 나라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지배층들은 ‘글로벌화’라는 미명 하에 ‘고등교육의 아웃소싱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해외에 수준 높은 고등교육기관이 있다면, 구태여 높은 비용을 부담해 국내에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를 경유하여, 자동으로 계층 격차를 재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밑바닥서부터’ 기어올라,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젊은이들을 제도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분명히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치명적인 착오가 있다.
19세기 미국 역시 부유층은 공교육의 도입에 반대했다. 우리 아이의 경쟁 상대를 가르치기 위해 어째서 세금을 투입해야만 하는가? 가난한 사람은 자기 책임으로 교육 기회를 손에 넣으라는 논리였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주장에 따랐다면, 미국은 지금도 후진국에 머물렀을 것이다. (9월 18일)
(2024-09-26 07:4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