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농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오길비 2024. 10. 21. 16:44

교토대 후지이 사토시 교수와 농업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후지이 선생과 필자는 서로 정치적 입장을 아주 달리한다. 하지만 농업을 사수함으로써 미국에 예속된 상태를 탈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두 사람 모두 ‘애국자’나 다름없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의 농업은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필자가 태어났던 1950년대에 일본의 농업 취업 인구는 1,500만 명이었다. 총인구의 약 2할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셈이다. 2030년 농업 종사자는 140만 명일 것으로 예측되는데, 1할까지는 유지하고 있었던 비율도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38% (스즈키 노부히로 도쿄대 교수에 따르면 실상은 10% 이하라고 한다). 이러한 식량 자급률은 캐나다의 경우 266%, 호주가 200%, 미국이 132%, 프랑스가 125%, 독일이 86%, 영국이 65%, 이탈리아가 60%.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최저치이다. (한국 49% - 옮긴이) 정부가 2030년까지 자급률을 45%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과 대조적으로, 농업 종사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농업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까?

 

대기업을 유치하여 막대한 규모의 기계화에 따른 생산성 높은 농업을 실현하겠다는 헛된 구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자기 소유 토지에서 수확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삼림이나 해양, 하천 호수와 관련한 환경 비용은 부담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는 한, 농업은 성립하지 못한다. 이제까지 생태계를 유지하는 일은 농민의 ‘무급 노동’이 책임져 왔다. 한편, 자본주의 기업은 ‘비용의 외부화’가 기본이다. 이런 비용은 절대로 부담하지 않는다. 결국, 농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생태계 보전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하게 된다. 거액의 세금을 퍼부어 기업이 돈벌이할 환경을 정비해야만 성립하는 게 농업이라면 그걸 ‘높은 생산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농업이 시작된 지 1만 년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시작된 지는 겨우 200년이다. 이중 어느 쪽에 인간의 경험지가 축적되어 있는지는, 일고의 가치도 없을 것이다. (시나노마이니치 913)

 

 

지난주에 이어서 농업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일본의 식량자급률이 선진국 가운데에서도 특출하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는 농산물과 관련해서도 ‘필요한 것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시장에서 조달하면 된다’는 시장 원리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게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도 학습하지 못했던 것인가.

 

마스크 품귀 현상은 ‘감염증 사태가 터지면 대량으로 필요케 되는 의료품’을 제조 비용이 덜 드는 외국에 아웃소싱하여, ‘재고를 남기지 않을 것’을 경영의 성공과도 같이 여기는 기업가가 불러일으킨 참화이다.

 

농산물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전쟁, 유행병, 자연재해, 물가고 등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필요로 하는데 얻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따라서, 집단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의료 붕괴를 겪은 뒤 필수 의료자원을 국산으로 전환하여 수입 의존을 끊었다. 이게 상식적인 대응이다.

 

집단이 목숨을 잇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에는 에너지, 식량, 의료 그리고 교육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12.6%. 선진국 가운데 100%를 넘는 나라는 노르웨이, 호주, 캐나다, 미국뿐이고, 영・프는 60% 전후, 독일이 35%. 아무리 비교해 봐도 일본은 비정상적으로 낮다. 무슨 일이 일어나 공급망이 끊기면, 일본은 그 즉시 에너지가 고갈하는 나라인 셈이다.

 

하지만 여하한 기간 자원과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자급자족을 염두에 두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는 식의 약한 태도를 과시하려는 것처럼 필자에게는 보인다. 일본의 농업이 괴멸하면 미국은 일본에 대해 문자 그대로 ‘생살여탈권’을 가지게 된다. 이 권한을 위정자들은 속국의 대리인 지위를 얻고자 맞바꿀 공물로 갖다 바치려는 속셈이다.

 

이상이 후지이 사토시 선생과 나눈 이야기이다. (동지 920)

 

(2024-09-26 07:3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