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가려읽기) 샤피로에게 배운 유대인의 지혜 - 에릭 호퍼

오길비 2024. 9. 6. 18:57

“그의 얼굴에는 모든 유대 인의 얼굴에 예외 없이 괴롭게 각인되어 있는 영원하고 씁쓸한 비애가 서려 있었다.”

 

 

나는 다시 소개소로 돌아왔다. 일자리는 흔치 않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소개소에 붙어 지냈기에 먹고살기에 충분한 일을 계속 구할 수 있었다. 어떤 고용주들은 성실한 일꾼이라며 일이 있을 때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소개소로 전화를 할 때 내 이름을 지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다. 어느 날 나는 산타페에 있는 파이프 야적장으로 급히 불려 갔다. 그 야적장은 자영 석유업자들에게 중고 파이프를 파는 곳이었다. 주인은 샤피로라고 하는 활기찬 성격의 키 작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에도 나는 인종적 배경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흑인이나 백인, 멕시코인, 중국인은 구별할 수 있었지만 샤피로가 유대인들이 쓰는 이름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나는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샤피로의 눈길을 의식했다. 그가 퇴근이나 하라고 할지 내내 의심스러웠다. 야적장의 일은 별로 힘이 들지도 않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는 데 놀랐다. “이 일이 좋은가? 먹고살 돈은 넉넉한가? 잘 먹고, 우유를 마시는 것을 빠트리면 안 되네”라고 하면서 그는 나에게 20달러를 선불로 주었다.

 

그것이 나의 안정된 첫 일자리였다. 나는 일하고, 책 읽고, 연구하는 일과가 좋았다. 샤피로와의 우애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상사와 고용인이 스포츠나 정치 이야기를 나눌 때 일상적으로 그런 우애를 보여 준다. 샤피로는 나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읽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대학 교육을 받았고 교수직을 가졌을 수도 있었지만 아저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야적장을 물려주어 교수직 대신에 유능한 고물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속죄의 날인 욤 키푸르 때에 야적장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나는 샤피로의 유대인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유대인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샤피로가 나를 주목하는 것도 유대인 기질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을 통해 나는 유대인은 특이한 인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은 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역사를 통해 인구수에 걸맞지 않는 큰 역할을 해 왔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유대의 신은 게으른 귀족이 아니라 힘든 노동을 하는 숙련공이었다. 서양은 그런 신을 숭배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기계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은 독창성과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하고 기계 시대를 열지 못한 채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여야만 했다. 샤피로는 나의 그런 생각이 좋다며 글로 쓰기를 권했다. 나는 그가 들려주는 유대인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는 내게 유대인이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아는 인종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유대인은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만 예수와 사도들 같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새로운 종교를 세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유대인은 인간의 얼굴에 나타나는 상형문자를 해독해 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인간이 행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의 얼굴에 각인된다.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한 권의 열린 책이다. 그러나 상형문자로 쓰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사람은 극소수이다. 나는 해가 갈수록 유대인에 대한 집착이 깊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샤피로는 나에게 르낭의 『이스라엘 민족사』를 읽어 보라고 권했다. 5권으로 된 그 책은 구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샤피로의 서고에 그 책이 있었다. 요즈음에는 르낭의 『이스라엘 민족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빛나는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몰두는 그가 좋은 예언가가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성찰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 시대의 상황을 현대의 최고 사상가보다 더 정확하게 조명해 준다.

 

1930년 나는 28세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샤피로와는 2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 마르타의 예언대로 내가 40세까지밖에 살지 못한다면 여생을 샤피로의 야적장에서 보내야 했으리라. 그러나 샤피로는 1930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샤피로의 죽음은 내 운명의 정점인 것처럼 느껴졌다. 저축한 돈이 얼마간 있어서 나는 1년 동안 그 돈을 쓰면서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1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