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독) 자기 주제를 파악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 중 90% 이상이 자신은 다른 보통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 대학 교수들의 94%는 동료보다 자신이 연구를 더 잘 수행한다고 믿는다. 미국 대학 농구 선수들 중 60% 이상이 자기가 메이저 팀에서 뛸 것으로 믿지만 실제로는 5%만 그렇다.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을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평균 20% 이상 더 높게 생각한다. 즉,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내게 웬 책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준 대답은 “내가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자기도취에 빠진 것은 아닌지, 내가 똥 묻은 개인데 겨 묻은 개를 탓하기만 하는 건 아닌지, 내 눈 속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 속의 티끌만 보는 것은 아닌지, 내가 제대로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인지 등등이 불안하다 보니 확인을 받으려고 읽는다.”는 것이었다.
- 『세이노의 가르침』 228~229쪽(전자).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는 1999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논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상대적으로 덜 똑똑하고 덜 유능한 사람들한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시하는 능력 또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과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이것을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이 현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포스트 트루스』(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두리반, 2019)를 참고하시라.
-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168쪽.
바통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 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 피천득, 『플루트 플레이어』
문인보다 비문인 에세이스트의 편집자를 자처한 것은 이러한 성격 종합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문인이 쓴 소박한 글은 ‘문필가이기 전에 꾸밈없는 한 사람이구나’라는 편안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글쓰기가 생업이 아닌 직업인이 쓴 자유롭고도 개인성 충만한 글은 ‘지휘자구나, 이 사람은 자기 삶과 자기 주변을 지휘하며 형성한 꼭 자기다운 분위기라는 것을 일구어 냈구나’라는 경탄을 이끌어 낸다. 근사한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삶 각각이 태생부터 이미 완전하다는 깨달음이 따른다.
발췌한 문장을 쓴 디자이너는 저 문장 뒤로 “A4 용지는 한눈에 들어오고, 다루어야 할 것은 13개 문자밖에 없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썼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 일, 그 일을 ‘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 김미래, 『편집의 말들』